우리나라 불교에는 지혜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문수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사찰들이 많다. 신라 자장 스님이 중국 당나라 청량산(오대산)에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후부터 문수보살에 대한 이적들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불교 설화 속에도 경흥대덕(憬興大德) 스님이 문수의 경책을 받은 일이나 연회국사(緣會國師)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이야기, 신라의 태자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한 오 방위 신앙을 정립했던 기록 등이다. 또 조선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의 설화, 문수동자의 경책을 들은 환우 화상 이야기, 땡추로 변화한 문수보살, 하동 칠불암의 문수동자 설화 등도 저마다 사찰에 문수보살의 이적을 말해준다. ‘화엄경’에는 중국의 청량산(오대산)을 문수보살의
약재로 쓰이는 침향(沈香)을 만들기 위해 향나무, 소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오랫동안 갯벌에 묻어두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침향을 얻기 위한 목적을 넘어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침향을 마련하려는 종교의식으로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 지역에서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바닷가 갯벌에 나무를 묻고 이를 기념하는 매향비(埋香碑)를 세웠다.갯벌에 묻은 이들 나무는 수백 년이 지나면 그 강도가 강철로 변하고, 천년이 지나면 용과 같이 스스로 바다 위로 떠 오르게 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화세계(龍華世界,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獅子山)에 있는 법흥사(法興寺)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 성지이다. 사적기에 따르면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받아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해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흥녕사(興寧寺)였다. 이후 신라 말에 징효절중(澄曉折中) 국사가 중창해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으로 삼았다. 징효절중 국사는 당나라에서 남전보원의 법맥을 이은 뒤 847년 문성왕 9년
한국불교에도 여자 스님을 뜻하는 비구니 스님이 세운 종단이 대한불교보문종(大韓佛敎普門宗)이다. 한국불교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이 큰 집이라면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 원불교 등 여타 불교 종단과 함께 대한불교보문종도 불교 종단협의회에 속하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비구니 종단이라고 한다.불교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양모(養母)이자 최초의 출가 비구니이였던 대애도 구담미(大愛道 瞿曇彌, Mahapajapati-Gotami) 스님이 비구니 스님의 초조이다. 근현대에 이를 계승, 세계 유일의 비구니 종단을 세운 스님이 바로 긍탄(
우리는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이전에 없었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유지될 수 있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 서있다.미래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차세대 기술'과 는 차별화된 신기술에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연구가 진행되고 개발될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차세대 기술' 이라는 두 단어에는 '현 세대 기술 관련 시장은 레드오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는시장 상황이 숨겨져 있다.특정 기업이나 연구소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주력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기술을 개척할 아이디어는 없다&
한국 불교계의 국보급으로 추앙받는 원효(元曉), 의상(義湘), 도선(道詵), 진각(眞覺) 4명의 스님이 수행했다 해서 사성암(四聖菴)이라는 절이 있다. 사성암은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사성암(四聖庵)길 해발 350m 오산(鰲山)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평지에 우뚝 솟은 바위산 정상부근 암벽에 세웠다.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오산의 깎아지른 절벽에 사성암을 세웠다고 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즉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수도한 곳이어서 사성암이라고 한다. 송광사 제6세인 원감 국사 문집에도 사성암이 있는 오산(獒山) 정상에 참선하기에 알맞은 바위가 있는데 이들 바위는 도선, 진각 양 국사가 연좌수도 했던 곳이라고도 기록돼 있다. 이 같은
낙태와 유산 등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태아 혼(태아령)의 극락 천도를 발원하는 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절이 있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있는 대원사(大原寺)는 천년 고찰이면서도 태아령 극락 천도와 지장 기도 도량이다. 천봉산 대원사(天鳳山 大原寺)는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로 백제 무령왕 3년인 503년에 신라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됐다. 경상북도 선산군 모레네 집에 숨어 살면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의 어느 날 꿈속에 봉황이 나타나 “아도! 아도! 사람들이 오늘밤 너를 죽이고자 칼을 들고 오는데 어찌 편안히 누워 있느냐?. 어서 일어나거라, 아도! 아도!”라고 하는 봉황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 보니 창밖에 봉황이 날갯짓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봉황의 인도를
사람이 병이 들어 위급할 때 혈맥을 찾아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곧 병이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천의 병도 절을 짓거나 불상, 탑, 부도 등을 세우면 이는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것과 같다는 풍수적 설화가 내려오는 절이 있다. 바로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휴양림길 232(용리 산1-2)에 있는 절로 일제 시절 폐사됐다가 100여년만인 지난 2014년 3월 1일에 복원된 비슬산 대견사(毗瑟山 大見寺)이다. 대견사는 설악산의 봉정암, 지리산의 법계사와 더불어 1000m 이상에 자리 잡은 사찰 중 한 곳이다. 요가를 통한 참선 수행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절이다. 통일신라 제42대 흥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대견사(大見寺)라는 절 이름은 중국 당나라 문종(文宗)이 절을 지
불교 경전 중 금강경에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란 구절이 나온다.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본래 형상이 아닌 것을 알면 곧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절에 모셔진 불상 역시 본래 없었다. 석가모니부처님 시절에는 불상이나 성물(聖物)들이 없었지만, 부처님 열반 후 500년 후에 그리스의 조형 양식을 빌려 사람의 다양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시발 처가 바로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 지역이다. 간다라 지역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재위 BC 336∼BC 323)이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성립하는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도처로는 설악산 봉정암, 남해 보리암, 팔공산 갓바위, 선운사 도솔암 등이 있지만 서울에서는 멀다. 최소한 1박 2일 일정을 잡아야 잠시라도 기도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버금가는 기도 도량이 바로 경기도와 서울시를 연결하고 있는 관악산 연주봉 연주대이다. 서울과 경기도 인근에서 누구나 대중교통으로 접근해서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연주대의 응진전을 두고 있는 연주암은 677년 통일신라 문무왕 17년에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할 당시 관악사(冠岳寺)라 했다고 한다. 관악산(冠岳山)의 관(冠)은 갓이라는 뜻으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에 선종(禪宗)의 시조로 알려진 달마 스님이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 바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達磨山) 미황사(美黃寺)다. 미황사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나 어부들이 가면 멀어져 오가고를 반복했다. 이를 본 의조 스님이 제자 100여명과 함께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고 한다. 스님이 배에 오르니 황금 복장을 한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 성중(聖衆)·53 선지식(善知識)·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그날 밤 의조 스님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一萬佛
스님들이 예불 시에 종을 칠 때마다 범종에 새겨진 일본 지도를 두드린 탓에 일본지도 중 홋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가고 있다고 한다.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있는 실상사(實相寺) 범종에는 바로 일본의 지기를 누르고 망동을 저지하기위한 비밀스런 사연이 있었다. 사적기에 따르면 천년 사찰이자 호국사찰로 잘 알려진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인 828년에 증각대사 홍척(洪陟) 스님이 창건했다. 당나라에서 유학 중 선(禪) 중흥조 마조 도일스님의 제자 서당 지장(西堂 智藏)스님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했다가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다닌 끝에 현재의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증각대사가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
불교 혁신의 기치를 내건 결사(結社)를 거슬러 가면 고려시대 '정혜결사', 지난 1947년 '봉암사 결사'가 스님들 중심의 결사였다면 스님들이 민초들과 함께한 결사가 '백련결사' 였다. 바로 그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번지에 있는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 국사(801~888)가 산 이름을 따라 만덕사(萬德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후 고려 시대 일반 백성과 스님들이 함께 퇴락한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결사 도량으로 거듭난 곳이다. 고려 희종 7년째인 1211년에 원묘 국사 요세(1163~1245) 스님에 의해 중창과 함께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주도하면서 원묘 국사를 포함한 여덟 명의 스님들이 국사로 배출돼 조명받은 사찰이다. 백련결사는 당시 피폐해가고 있는 고려
불교가 인도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각각 들어온 이래 자기 혁신을 통한 큰 흐름이 있었다면 고려 시대 '정혜결사(1210년)'와 지난 1947년 '봉암사 결사'를 들 수 있다. 바로 그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는 한국 불교의 선맥을 결사(結社)를 통해 이은 도량이다.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 도헌(道憲 824-882) 국사가 창건한 신라 고찰이자 마음을 깨닫는 선(禪) 불교를 수행으로 삼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근본 도량이다. 봉암사(鳳巖寺)의 봉암은 봉황(鳳凰)새 봉(鳳)과 바위 암(巖)을 뜻한다. 지증 도헌 국사가 희양산 중턱에 절을 지을 당시 현재 사찰 입구에서 백운 계곡의 숲길을 따라가다 보이는 계암(鷄巖)이라는 큰 바위에서 닭 한 마리가 매일 새벽을 알렸
[김종훈 칼럼] 우리는 공산주의와 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상하라고 지도자를 뽑았다.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살가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떻게든 대화할 짬을 내어 일본 최고 지도자와 10분 대화를 나눈 것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하는 일이다.몸에 문신이 있으면 어디론가 잡혀가던 때가 있었다. 동네 아저씨가 마을상회 앞에서 막걸리 마시며 대통령 욕을 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두어 달 후에 나타났다.‘아이고, 대통령 욕하다 삼청교육대 잡혀 갔었대. 맞아도 싸지 싸...’ 동네 분들이 수군거렸고 아저씨는 종종 막걸리를 드시며 마을상회
부처님이 때로는 ‘때밀이’, 등짐을 나르는 ‘소’, ‘짐꾼’, ‘중매쟁이’로 나서 보살도를 펼쳤다. 이번에는 ‘중매쟁이’로 현몽한 기도 영험 도량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홍은동 8)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암 이야기다. 정확한 창건 기록이 없는 가운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기 전에 옥천암에서 기도했다는 설과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 씨가 아들 고종의 복을 빌 때마다 이 마애불을 찾아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옥천암이 근현대에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나무꾼인 윤덕삼 총각이 이곳에서 마애불인 보도각 관세음보살(普渡閣 觀世音菩薩)님 앞에서 기도하고 나서 그 인연으로 장가를 가서 거부(巨富)가 됐다는 실화가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널
교외별전(敎外別傳)·불립문자(不立文字)·견성성불(見性成佛)과 함께 불교 선종의 주요 교리를 뜻하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은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는 뜻이다. 선종(禪宗)의 개조(開祖) 달마(達摩) 대사의 가르침이다.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아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였음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뜻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어 교리를 공부하거나 계행을 떠나서 직접 마음을 교화하고 수행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선종의 2대조 혜가(慧可) 스님이 달마 대사와의 문답에서 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에게 불도를 얻는 법을 묻자, 달마 대사는 한 마디로 마음을 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이므로 모든 현상은 오직 마
신라 불교 최초 가람인 적멸보궁 도리사(桃李寺)는 신라 제19대 눌지왕때인 417년에 고구려 출신의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신라 불교의 발상지이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길지로 여겨 이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사찰명을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상징하는 도리사(桃李寺)라 했다고 한다. 태조산 도리사(太祖山 桃李寺)는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로 526에 있는 절로 도리사 태조선원은 대구 파계사 성전(聖殿), 은해사 운부암, 비슬산 도성암과 더불어 영남 4대 도량으로 꼽히고 있다. 도리사는 해동최초가람 태조산 성지라는 소개와 함께 아도화상 사적비, 불량탑 시주질비, 아도화상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수행으로 삼는 선종(禪宗)이 신라 말과 고려 초 우리나라에 처음 유입됐다. 전국에 9개 문파가 각기 독자적인 선(禪) 수행을 했다 해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하고 그 중 제일 먼저 개산(開山) 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사찰이 전남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 보림사(迦智山 寶林寺)이다. 도의(道義)의 가지산문(迦知山門), 홍척(洪陟)의 실상산문(實相山門), 혜철(惠哲)의 동리산문(桐裏山門), 도윤(道允)의 사자산문(獅子山門), 낭혜(朗慧)의 성주산문(聖住山門), 범일(梵日)의 사굴산문(闍崛山門), 지증(智證)의 희양산문(曦陽山門), 현욱(玄昱)의 봉림산문(鳳林山門), 이엄(利嚴)의 수미산문(須彌山門)을 말한다. 선종(禪宗)은 석가모니 부처가
고려시대 국교가 불교였지만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사상적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철저히 불교를 배척했다. 하지만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부터 이후 후대 왕실에서는 선대왕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해 왕릉과 함께 사찰을 아낌없이 지원한 사례가 바로 경기도 남양주시 운악산(雲岳山) 기슭에 있는 천년 고찰 봉선사(奉先寺)다. 봉선사는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할 당시에는 산 이름을 따 운악사(雲岳寺)라 했지만, 그 후 1469년 조선 8대왕 예종 1년에 세조의 위업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세조의 비(妃) 정희왕후 윤씨가 89칸 규모로 중창하고 봉선사(奉先寺)라 개칭했다고 한다. '선왕의 능을 받들어 모신다(奉護先王之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