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불교는 철저히 배척당해서 스님들을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격하시키고, 불교 절을 대폭 축소하려는 정책에 따라 1406년 태종 6년에 국가가 인정한 사찰을 242개사로 줄였고, 다시 1424년 세종 6년에는 전국의 사찰 중에서 선교양종(禪敎兩宗) 각 18개 사찰씩 36개만 선정하여 3700여 명의 스님만 인정하는 숭유억불 정책의 수난 시대였다. 하지만 이 같은 탄압속에서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奉恩寺)는 794년 신라 원성왕 10년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창건한 이래 수많은 전란 속에 끊어질 뻔한 조선불교의 맥을 되살린 왕찰로 그리고 수도 불교의 상징으로 사세가 부흥 중이다. 연회국사가 창건 당시 견성사(見性寺)라 하였지만 조선 시대인 1498년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자신의
한국의 지장 신앙은 관음 신앙, 약사 신앙과 더불어 대표적인 보살 신앙이다. 관음 신앙이 살아 있는 자의 현세 기복을 위한 것이라면 지장 신앙은 죽은 자를 위한 신앙이다. 바로 심원사가 지장 도량의 대표적인 절 중 하나이다. 다른 지장 도량과는 달리 ‘생지장보살 도량’으로 불린다. 그만큼 심원사 지장보살 기도 관련 영험담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원심원사는 647년 진덕여왕 1년 영원 스님이 영주산 흥림사로 창건했다. 이후 720년에 사냥꾼 이순석 형제가 지장보살의 감화를 입어 환희봉(지장봉) 아래쪽에 석대암(石臺庵)을 창건했다고 한다. 숱한 전란과 화재로 소실된 것을 1396년 무학대사가 중창하면서 산 이름을 영주산(靈珠山) 현재의 보개산(寶盖山)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심원사(深源寺)로 개칭했다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에 이어 '아득한 성자'라는 화두 시어(詩語)로 대를 이어 근현대 불가(佛家)를 지킨 절이 있다. 겨울철 내리는 눈으로 무문관이 된 설악산(雪嶽山) 신흥사(新興寺)다. 설악산 신흥사 산 내 백담사로 출가한 만해 한용운 스님의 시맥을 이어, 세수 87세까지 동안거와 하안거 때에 무문관에 입방한, 무산 오현 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 이야기다. 신흥사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 산 내 봉정암, 오세암, 백담사를 부속 암자로 두고 천 년을 넘어 스님들의 치열한 수행담이 이어져 오고 있다. 왜 그곳에서, 수행 중인 스님들은 깨달음을 얻었겠는가? 바로 눈(雪) 덕분이다. 눈이 하도 많이 내리니 옴짝달싹도 못 하고, 오로지 수행 외 할
초등 학교 친구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건강이 최고라는 내용의 신외무물(身外無物: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이었고, 덧붙여 우리네 인생도 다 쓰다 남은 ‘몽당연필’ 같으니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자는 말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저려왔다.왠지 허전하고 지나간 날들의 아련한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언제 부턴가 계절의 바뀜에 점점 예민해져 가고 매사가 아쉽고 감정도 차츰 감성적으로 변해간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계절 탓인가?가을은 참 희한하고 이다지도 아름다운 계절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밭에 남아 있는 들깨를 털다가 문득 가을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과 관련된 유적이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성안에 절이 있다.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三郞城)의 원래 이름은 발이 세 개 달린 솥을 엎어놓은 모습이라는 정족산성(鼎足山城)이지만 단군의 아들과 관련돼 삼랑성으로 더 친근하게 불린다. 바로 그 삼랑성 안에 있는 전등사(傳燈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아도화상(阿道和尙)이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강화도 남단 정족산 산등성이를 따라 단군의 세 아들 부소(扶蘇)·부우(扶虞)·부여(扶餘)가 쌓았다는 삼랑성안에 있는 전등사는 이 성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이 성의 문(동문, 남문)들이 전등사의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창건 당시는 진종사(眞宗寺)라 했지만
백두대간이 남서쪽으로 기세를 떨치다 마친 산 동남쪽 종남산 끝자락에 송광사가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569-2에 있는 송광사는 가지산파의 시조이자 전남 순천시 소재 승보종찰 송광사(松廣寺)를 세웠다는 도의(道義) 스님이 중국 산시성 시안 남쪽의 종남산을 본뜬 명칭이라고 한다. 산 지명을 종남산(終南山)이라 한 뜻은 도의 국사가 절터를 찾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영천수(靈泉水)를 발견하고 더는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송광사에서 송광(松廣)은 소나무가 많다는 의미인데 현재 종남산에
[일간투데이]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20대 말에 이천에 있는 반도체 회사 과장으로 일할 때다. 늦게까지 일하고 사수인 김대리님 차를 얻어 타고 퇴근하다 보면 방금 전 지나친 차의 미등이 안 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지역이 있었다.지형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안개인지라 조심해야 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고, 양쪽 창문을 열어 운전석과 조수석 쪽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행하며 안개 지역을 벗어났
호거산(虎踞山) 또는 운문산(雲門山) 사리암(邪離庵)은 미륵불이 올 때까지 중생을 제도한다는 나반존자(那畔尊者) 기도 도량으로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526에 있는 기도 도량이다. 사리암이 있는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로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자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 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호거산에서 호거(虎踞)는
낙산사 홍련암, 남해 금산 보리암, 강화도 보문사에 이어 한국의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여수 향일암(向日庵)은 기도 발원하면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도량이다. 향일암은 644년 선덕왕 13년에 원효 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19교구 본사인 화엄사 말사다. 사적기에 따르면 향일암이 위치한 여수 금오산(金鰲山)의 금오(金鰲)는 금 거북이, 향일암(向日庵)의 향일(向日)은 태양을 향한다 뜻이라 한다. 향일암은 원효(元曉)스님이 창건 당시 원통자재 한 관음보살의 위신력을 갖췄다 해서 원통암(圓通庵)이라 했으나 고려시대인 958년 광종 9년에 윤필(輪弼)스님이 중창하면서 금오암으로 개칭됐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군의 본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가 1849년 헌종 13년 무렵에
충청도의 대표적인 산중 하나를 들라면 계룡산(鷄龍山)이다. 닭도 수행하면 용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산이다. 그 계룡산이 품고 있는 사찰 중 갑사,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마곡사에도 깊고 깊은 창건설화가 있다. 먼저 동학사(東學寺)는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 시대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祭享)했다 해서 동학사라는 설화가 함께 전해진다. 동학사 창건은 남매탑 전설이 내려오는 신라 33대 성덕왕 23년인 724년 상원(上願) 조사 스님부터 시작된다. 당시에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淸凉寺)라 했다. 이후 고려 태조 3년인 920년 도선(道詵)국사가 중
자장율사가 선덕여왕의 “급거 귀국하라!”라는 왕명을 받고 당시 신라의 수도 경주로 가기 전에 고구려 땅인 삼척에 이런저런 방편을 폈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불교 신앙을 통해 강력한 국가 정신을 수립함과 동시에 위기에 처한 신라를 수호하고 고구려, 백제와의 긴장 관계에 대응하고자 당나라에 유학 중인 자장율사를 불러들여 경주에 황룡사 구층탑을 건립하고, 고구려 접경지역인 강원도 오대산을 중심으로 불교 성역화 추진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삼화사는 선덕여왕이 오대산 성역화를 추진하는 것과 궤를 같이해 창건됐다. 결국, 삼화사는 불교 신앙을 통한 국가 정신의 수립이라고 하는 호국사찰의 성격을 띠고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화사는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집안에도 어른이 있고 승가에도 고승이 있듯이 나라에도 임금의 스승이 있었으니 이를 일러 국사(國師)라 했다. 국사는 승속은 물론 나라에도 질서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무너져 가는 승가(僧家)를 바로잡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고려 시대 나라의 큰 스승이었던 국사 열여섯 분을 배출한 승보종찰(僧寶宗刹) 송광사가 그렇다.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 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다. 참선 수행을 위한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 율원을 갖춘 대한불교조계종 총림(叢林) 중 하나인 조계총림이자 16 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이다. 왜 송광사를 승보종찰이라 하는가는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
점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깨달음을 일컫는 돈오(頓悟)의 선풍을 우리나라에도 일으키면서 차(茶)와 함께 뿌려 그 꽃을 피운 다선일미(茶禪一味) 근본 도량이 있다. 선(禪)은 몸과 마음을 맑히는 수행의 방편인 차(茶)와 같은 맛이라, 이곳은 선과 차가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법석을 장엄하는 범패가 어우러진 곳이 바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인 쌍계총림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724년 신라 성덕왕 23년에 삼법(三法) 스님과 대비(大悲) 스님이 창건했지만 이후 840년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작은 수행처에 불과했던 이곳을 남종선의 시조인 육조 혜능대사의 정상(頂相)을 모셔와 육조 혜능대사의 법맥을
흔히 종교는 자기로부터의 반성, 참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참회는 처절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돼 '알음알이' 식을 버릴 때에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를 깨달아 돈오(頓悟, 즉각 깨달음)의 경지로 간다고 한다. 바로 그 처절한 몸이 부서지는 고행을 동반한 참회로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도량으로 거듭난 절이 있다. 염라대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절이 경상북도 의성군 등운산 고운사(孤雲寺)다. 오죽했으면 저승의 염라대왕이 불러서 가면 "너 고운사 다녀왔냐?"라고 물었겠는가. 염라대왕도 고운사 지장보살에게 조복(調伏)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살아 생전에 고운사 다녀왔으면 평소 참회를 했으니 지옥은 면해주겠다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4인조 의성 낭자들이 시골벽지에서
의상대사가 671년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해 세웠던 사찰이 지난 2005년 4월 5일 화마에 휩싸이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 지하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소방방재청장에게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불을 진화하라고 지시했다.당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는 긴박했던 상황을 담은 사진이 걸려있다. 강풍을 등에 업은 화마는 끝내 낙산사를 초토화할 기세로 휘몰아쳤지만, 경내 암자인 홍련암에는 화마가 범접하지 못했다.바로 그 낙산사는 의상대사가 관세음보살 진신을 친견 후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중에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국
미당 서정주 시인이 ‘선운사 동구’라는 시로, 가수 송창식이 ‘선운사’라는 노래로 세간에 더 친숙하게 알려진 도솔산 선운사(禪雲寺)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소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선운사는 이생에 한이 맺혀 떠나지 못하고 있는 묵은 영가를 천도하고 후천개벽에 미륵보살이 출현한다는 비결이 숨겨진 곳이다. 선운(禪雲)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이 머물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에 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도솔산의 도솔(兜率)은 욕계(欲界) 육천(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로 미륵보살이 산다는 도솔천을 의미한다. 도솔산의 형세는 ‘만 필의 말들이 뛰어오르는 형상이자 뭇 신하들이 임금과 잔치를 벌이는 모습으로 만물의 근원에 돌아간 신선이 모이는 형상’이라는 기록이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이요,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같은 음을 간직하고 있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는 뜻을 간직한 절이 있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팔공산 자락의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 동화사와 조계종 직영사찰인 선본사는 갓바위 부처님의 기도영험담이 서린 곳이다. 두 사찰 모두 신라시대이래 기도발이 수천 년을 걸쳐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시 신라는 동쪽으로 지금의 경주 토암산(동악), 서쪽으로 충청도 계룡산(서악), 남쪽으로는 지리산(남악), 북쪽으로는 태백산(북악), 그리고 그 중심에 대구 팔공산(중악)을 호국성신과 성산으로 지정하여 국가차원에서 제를 올리는 신령스런 영산(靈山)으로 삼
[일간투데이] 사회현상부터 물리현상까지 이분법적 분류가 전체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크다/작다, 길다/짧다 부터 총론과 각론, 미시와 거시 등 고상한 요소들도 전체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고 있다. 반대는 인류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개념인 것 같다. 반대되는 부분을 잘 살펴보면 상황의 파악이 용이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길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반대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반대는 분열을 의미하는지? 글을 읽지 못하던 나이라 저녁 때 아버지가 오늘 신문을 찾으시면 신문 더미에서 킁킁 냄새를 맡아 그 날 신문을 가져다 드리던 때였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우유를 배달시키셨는데, 정사각형 하얀 비닐에 통통하게 들어있는 우유를 커
지리산은 신라 시대에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중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명산 오악(五岳; 동학 토함산, 서악 계룡산, 중악 팔공산, 남악 지리산, 북악 태백산)중 하나로 지정됐다. 당시부터 지리산에서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화엄사 초입에는 남악사(南岳祠)라는 제당이 남아 있다. 한국의 신령스러운 성산(聖山)중 하나인 지리산 지명은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부처님이 법계 평등의 진리를 깨달아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기린 화엄경(華嚴經)에서 실천적 행동과 수행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하자고 그 성산에 사찰을 세웠다는 것이다. 바로 그 화엄사(華嚴寺)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錦山)내 보리암(菩提庵)은 신라 시대 창건된 절로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한국 관음 신앙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보리암은 한국의 대표적인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지중 하나다. 법화경과 화엄경에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은 법신불의 대행자 역할을 하면서 대자대비의 상징으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직관하여 구제해준다. 십일면관음, 천수천안관음 등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듯이 일반 대중의 고통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보살로 아미타불과 함께 일반 대중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이다. 이처럼 관음 신앙은 삼국 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된 이후 통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영험담과 설화를 이어오고 있다. 관음 신앙 가운데에서도 남해 보리암은 특히 해수 관음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