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모시는 천도제나 법회 때 수백 년 동안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인용구를 들라면 단연 으뜸인 게 있다. 바로 서산대사의 해탈시와 임종 시 남긴 임종게 중 일부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 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발걸음을 내딛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리니)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是(생사가래역여시,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서산대사가 “전
성스러운 곳에는 그럴만한 설화나 전설이 서려있다. 속세를 떠난 산속에 부처님 법이 머무르고 있는 절이라는 뜻 때문이다. 속세(俗)를 떠난(離) 산(山)을 뜻하는 속리산(俗離山)에 부처님 가르침인 경전 법(法)이 머무르고(住) 있는 절(寺)이라는 속리산(俗離山) 법주사(法住寺)가 바로 그 도량이다. 그곳에서 한글을 창제하는데 중심 역할을 한 신미대사가 산내 암자인 복천암에서 머물렀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인 553년 의신화상이 인도 유학 후 흰 노새에 불경(佛經)을 싣고 돌아와 절터를 찾을 때 흰 노새가 발걸음을 멈춘 자리가 바로 현 법주사라는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이다. 이 같은 설화는 중국과 파키스탄 불교 성지에도 전해온다. 중국 후한
절 이름을 살펴보면 그 절의 창건, 중창 설화를 가늠케 한다. 바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자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 이야기다. 하얀 양(白羊)이 스님의 금강경 독경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는 백양사(白羊寺)가 그렇다.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백암산(白巖山) 백양사는 백제 시대 고찰로 율원, 강원과 3개 선원(천진암, 고불 및 운문 선원)을 갖춘 고불총림이다. 특히 운문암 운문 선원은 북한의 마하연과 함께 한국불교의 양대 선원으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수행처다. 태고사, 월명암과 함께 한국불교 3대 수행처로 스
흠모했던 의상 스님을 때론 용으로 그리고 뜬 돌로 환생과 변신을 해 불법을 지킨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부석사(浮石寺)에는 애틋한 사연이 깃들어있다. 당나라 유학 후 귀국하는 의상 대사를 험한 바닷길을 외호하기 위해 용으로 환생하는가 하면, 불사를 방해한 도적 떼를 쫓기 위해 공중에 바위 돌로 둥둥 떠다녔다는 선묘 낭자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연이 내려온다. 의상 대사는 당나라 유학 후 부처님의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기린 화엄학을 강론하기 위해 문무왕의 왕명으로 676년 부석사를 창건했다. 당시는 산에 산적들이 많아 절을 세울 때는 이들 산적과 화해를 하거나, 이들을 내쫓지 않으면 사찰 건립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의상 대사와 선묘 낭자의 인연은 이렇다. 당나라 유학
[일간투데이] 우리는 지금 하늘같이 무서운 공권력 행사를 보며 또 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일제강점기 식민지시대 일제의 압제와 해방 후 미군정의 지배 그리고 군사독재시절의 중앙정보부의 서슬퍼런 통제의 역사를 겪었기 때문이다.국민들은 현재의 검찰제도가 일제강점기에 무자비한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도입되고 형성된 이후 지난 20년의 검찰공화국 식민지화에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임상의학개론 시간이었다. 다음 해에 병원장이 되신 신장내과 김형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제 케이스를 제시해 주시고, 질환을 분석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정암사(淨巖寺)는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해 한국 불교사에 사리 신앙이 시작된 절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리(舍利)는 불교에서 계(戒), 정(定), 혜(慧) 등 삼학(三學)을 성취한 수행자에게 나타나는 결정체로 여기고 있다. 스님들 사후 화장, 다비하는 과정에서 영롱한 구슬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유골 결정체를 통칭한다.태백산 또는 함백산 정암사(淨巖寺)는 오대산 상원사, 영월의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양산의 통도사와 더불어 부처님 정골사리(頂骨 舍利)를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다.자장 스님이 세속의 인연이
서슬이 시퍼런 시절인 지난 1970년 어느 날 춘성스님을 평소 눈여겨본 육영수 여사는 본인 생일날 특별한 분으로 춘성스님을 모셨다. 당시 춘성스님은 강화도 보문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었다. 청와대 뜰에서 열린 육영수 여사 생일잔치에 축사하러 법상에 오른 춘성스님은 10분여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한다. 이윽고 춘성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했다.“아, 오늘은 육 보살이 자기 어머니 거시기에서 응애하고 태어난 날이로다”라고 하자 거기에 참석했던 축하객들은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고 한다. 이를 본 박정희 대통령은 “아니 우리나라에
용주사(龍珠寺)는 뒤주에 갇혀 고통을 겪다가 8일 만에 비명횡사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염원했던 왕찰(王刹)이자 정조 대왕의 원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자, 효행 근본도량이다. 용주사는 854년 신라 문성왕 16년에 염거화상이 창건 당시 갈양사(葛陽寺)였지만 이후 수많은 전란을 겪으며 부침을 거듭했다. 이후 조선시대 들어 병자호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正祖)대왕이 부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효심을 기리는 능사(陵寺)로서 거듭난 곳이다. 정조대왕은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해 전국에서 시주 8만7000냥을 거두어 보경(寶鏡)스님에게 총도감을 맡겨 4년간의 공사 끝에 회향했다. 회향식 전날 밤 용(龍)이
한국의 불교에서 부처님 사리기도 영험 담의 씨앗은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뿌렸다. 신라 최고의 진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재상(총리)의 길을 버리고 출가했다. 이후 세계 문화 문명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당나라로 불교 유학길에 오른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五臺山) 기도 도량에서 간절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이 현신한 스님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 등의 진귀한 성물(聖物) 함께 “신라의 동북방에도 오대산(五臺山)이 있고 이곳에 문수보살이 일만의 권속들과 함께 거처하니 돌아가서 찾아보라”라는 뜻을 전해 듣고 귀국한다. 귀국 후 자장율사는 대국통(大國統)이라는 신라불교 최고의 수장으로 추대되어 불교를 통한 국론통합을 도모했다. 645년 일 년여에 걸쳐 수도 경주에 높이 80m에 이르는 황룡사 9층
혼자도 깨닫기 어려운데 한 가족 네 명이 깨달았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사찰이 있다. 부설(浮雪) 스님이 환속 후 장가를 가서 아들, 딸, 부인과 함께 모두 득도했다는 월명암(月明庵)이 바로 그 곳이다. 부설전(浮雪傳)과 월명암 사적기에 따르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내변산로 능가산내 월명암(月明庵)은 691년에 부설(浮雪) 거사가 창건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 소속 암자이다. 부설(浮雪) 거사는 재가 불자로서 홀로 도를 깨달은 인도의 유마 거사, 중국의 방 거사와는 달리 가족 네 명과 함께 깨달음을 얻어 세계 불교사에 전설이 됐다. 누구라도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으로 정진
진표(眞表) 율사 스님은 열두 살 때 고향 인근인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로 출가했다. 진표 율사는 출가 전 어려서부터 활쏘기를 좋아했고, 활 솜씨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늘 활을 들고 산과 들을 누비며 사냥을 하는 것이 소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사냥하러 가던 진표가 논둑에 앉아 쉬다가 개구리를 잡고 사냥 후에 가져가고자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가둔 채 산으로 올라갔다. 사냥한 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봄 예전처럼 사냥하러 가던 진표는 논두렁에서 구슬프게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듣게 됐고, 문득 지난해의 일이 떠올라 본인이 잡았던 개구리를 꿰어놓은 곳을 가보니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었다. 진표는 "내가 어찌 해가 넘어가도록 개구리에게 이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고,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자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화엄경’의 수행을 내걸었던 사찰이 바로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金井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14교구 본사(本寺)인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범어사다. 동국여지승람과 범어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는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고 있다”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 화엄십찰(新羅華嚴十刹)의 하나인 범어사의 창건은 의상 대사가 당
필자가 지난 2012년 파키스탄 간다라 불교유적지 순례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 후 수행 시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줄도 모른 채 깊은 선정에 들자 주변 나무들이 비 오는 날 우산을 받치듯 햇빛을 가리는 조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간다라 지역은 부처님 열반 500년 이후 처음으로 불상을 포함한 성물(聖物)들이 그리스 희랍의 조형 양식을 통해 조성된 불교 문화의 보고이자 성지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선정 삼매에 든 수행자를 나무들이 외호해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조각상은 ‘수행자에게 이적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와 같은 비슷한 형상을 나타내는 사찰이 바로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海印寺)다. 부처님의 법을 나무에 새겨 국난극복과 국운 융성을 기원했던 팔만대장경을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무학대사와 말 너머의 세계를 보고 서산 간척지를 완성했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기도 영험이 서린 간월암(看月庵)을 부속 암자로 둔 대한불교 조계종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修德寺)에는 사연도 많다.깨달음(見性)의 상징이 된 무학, 경허, 만공, 혜월, 수월 스님이 수행했던 곳이다. 수덕사는 강원, 선원, 율원을 갖춘 화두선인 간화선(看話禪)을 스님의 기본 수행으로 삼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5대 총림 중 덕숭총림 겸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다.수덕사 사적기에 따르면 수덕사는 수덕 도령과 덕숭낭자 수덕각
각 집안에도 종가댁이 있듯이 대한불교 조계종에도 종갓집이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불보사찰(佛寶寺刹) 영축총림 통도사가 바로 종택 격이다. 5대 총림 중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신라 시대 선덕여왕 15년인 646년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 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불지종가답게 창건 설화도 깊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묘법연화경’을 설법했다는 인도의 영축산과 비슷한 지세를 갖춘 곳에 자장 율사가 당나라 유학 후 귀국 길에 모셔온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절 이름을 통도사(通度寺)라 했다고 한다. 산 모습이 인도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 산인 영축산과 통(通)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신라 시대에 출가자는 계율
지금으로부터 1635년 전인 384년 백제 침류왕은 중국 동진(현재 절강성)에서 포교 활동 중이던 파키스탄 출신 마라난타 스님의 법력을 전해 듣고 간곡한 삼고초려 끝에 그를 왕사로 모시게 된다. 마라난타 스님은 고대 그리스 문화와 동양의 인도 문화가 융성하던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스와트, 탁실라지역의 최고 계급층에 속하던 브라만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라난타는 천문학, 의학, 고고학, 수학, 역사학 등을 섭렵한 후 출가해 불법 포교의 대장정에 나섰다. 마치 달마 스님이 당나라 양무제의 초청으로 중국에 불법을 전파하는 과정처럼 마라난타 스님 역시 백제 침류왕의 간곡한 초청으로 백제에 처음으로 불법을 전파하러 온 것이다. 지금이야 정보통신의 발달로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세계 곳곳의 날씨 정보와 비
[일간투데이] 우리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력의 수위와 대상이 랜덤화된 세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누구든’ 혹은 ‘누구나’ 라고 말해왔다.1999년 전후 반도체 회사에 실험계획법(DOE: Design of Experiment)이 적극적으로 도입됐다.반도체 엔지니어가 실험할 웨이퍼를 받기 위해 실험 계획 기안을 작성하고 결재를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실험계획 도구(SAS, SPSS, MiniTap)로 실험방법을 설계했는지 선택해야 결제를 올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런 제도가 도입된 것도 그 즈음이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첨단 기술을 통해 경제성장의 돌파구가 마련되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 공정 관리, 업무의 자동화 등을 통해 서비스의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생활환경과 기업의 비즈니스를 변화시키고 있다. 초연결, 초지능 시대가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이제 전 세계 인구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비즈니스의 모델도 변화되고 있다. 최근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 및 구축이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중요성이 더 증대되고 있다.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자동화, 스마트화, 지능화가 빠르게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이 향후 이들을 떠안고 가야 할 복지와 의료분야 등를 위해 쓰일 예산이 전체 예산의 50%를 넘어서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적자성 국가채무가 과거 역대 정부에서 이어온 것을 합치면 오는 2023년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를 위해 갚아 나갈 이자 비용만 16조원이라고 한다. 물론 이는 남녀노소 대한민국 국민이 떠안아야 할 할 세금이다. 느닷없는 세금이 집에 쪽지로 날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보다 내년 예산이 늘어나면 그와 비례해서 부족한 세수를 세금 또는 빚을 내서 짜야 한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이 고혈을 쥐어짜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그 대한민국 국가가 떠안아야 할 국민 혈세인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국가채무가 오는 2023년 700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