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연말이 다가오면 12월초부터 송년회로 여기저기서 부른다. 그런데 모처럼 대학 동창들을 만나 10분 이상 대화를 하면 소재가 없어지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인문학과 예술을 외면하며 살아온 덕이 아닐까? 이 칼럼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시며 에세이며 한때는 순수 문학청년처럼 살던 시대가 언제였던지 기억을 더듬어야 할지도 모른다.

돈 버는 일, 아이들 교육, 노후대책, 레저, 스포츠…. 그런 흔하디 흔한 이야기(누구든지 다 하는)를 하다 보면 도대체 우리가 이 세상에 돈이나 열심히 벌고 먹기 위해 태어난 건지 자문해 보게 된다. 어쩌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동창들끼리도 서로 의견이 갈려 옥신각신 고함 지르는 싸움판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요, 주말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요. 그냥 자연 속으로 들어가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돌아옵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어느 회사 중역의 푸념 섞인 이야기다. 그래 그동안 잘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세웠으며, 사람들을 만나서 회의를 하고 뛰어다녀야 했을까?

그런데 취미로 사진을 배우렸더니, 거기서도 각종 희한한 기술을 가르치며 복잡한 규칙과 기술에 얽매이는 노예를 만들고 만다. “내려 놓으세요. 이제는 사진을 배우더라도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현 시대에는 여기저기 스트레스를 만드는 요인이 많이 숨어있다. 이른 아침에 헬기가 아파트에 부딪혀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고,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놀라고 그것 때문에 국민 전체가 술렁이는 것도 스트레스 원인이다.

어느 햇볕이 따스한 오후, 벽에 걸린 그림자를 쳐다보았다. 마침 길가에 놓인 아름다운 벤치가 있어 마치 나무가 두 팔 벌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손짓하는 듯했다. 이리 와서 잠깐 앉았다 가라고, 저물어가는 저녁빛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지 않느냐고, 복잡한 생각은 잠시 내려놓으라고….

2013년 한해도 투쟁하듯이 살아왔던 당신들, 잠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저 따스한 빛에 마음을 좀 녹이고 다시 원기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굴뚝 없는 산업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는 영국은 원래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가 많기로 소문이 나있다. 그런데 그 영국의 대학 캠퍼스에는 여기저기 학생들이 앉아서 사색을 하는 벤치가 많다고 한다. 너무 남들이 하는 대로 휩쓸려 살았다 싶으면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바라보는 것도 유익한 일이 아닐까.

장일암 사진작가/생각하는사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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