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손해배상 소송 '패소'...정부 개선안 미봉책 불과

[일간투데이 조창용 기자] 현재 통신사들은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이 요구만 하면 가입자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바로 넘겨주고 있다. 법원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자 주무 부처가 1년여 만에 개선안을 내놨는데, 현재 관행을 더욱 고착시킬 수 있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통신사 임의로 넘기는 개인정보 800만건 현재 검·경·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자(통신사·포털 등)에 가입자 인적사항(통신자료), 통화·이용 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 감청(통신제한) 등 세가지 협조를 요구할 수 있다. 통화·이용 내역과 감청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필수지만, 가입자 인적사항은 예외다. 전기통신사업법(83조3)에서는 정보·수사기관의 장과 검사 등이 가입자 개인정보(성명,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과 해지일)를 요청하면, 전기통신사업자는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조항은 검·경 등의 요청에 ‘따를 수 있다’지만, 실제로는 ‘따라야 한다’로 운용됐다. 요청이 오기만 하면 무조건 다 넘겨줬단 얘기다. 또 통신사와 포털 등은 수사기관에 자신의 정보를 넘겼는지 확인해 달라는 가입자들의 요청도 묵살해왔다.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은 권리찾기에 나선 이용자와 법원이었다. 2010년 한 누리꾼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임의로 넘긴 네이버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민사24부)는 2012년 10월 해당 법률 조항이 “일반적인 수사협조 의무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어서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따라야 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며 원고 쪽 손을 들어줬다.

포털로서는 패소였지만, 업계에서는 판결을 반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수사기관 눈치를 보느라 정보를 내줬지만, 찜찜했기 때문이다. 자료제출 거부 명분이 생긴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은 이 판결 뒤로는 영장 없이는 가입자 개인정보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법원 판결을 애써 모른 척 하며 기존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케이티(KT)는 “수사자료 제공 중단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정보제공을 중단한다면 사건 수사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엘지유플러스(LGU+)는 “긴급을 요하는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포털은 명예훼손 관련이어서 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통신사는 혐의 내용을 알 수 없어 일단 내줄 수밖에 없다”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수사기관은 포털에도 당사자의 구체적인 혐의가 아니라 어떤 죄목과 관련한 수사인지만 밝힌 채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 미래부 “신청서 양식 표준화”…대안 될까? 정부는 지난달 19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인터넷 관련 규제 정비방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통신자료 제공 관련 제도 개선안이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미래창조과학부는 “수사기관의 ‘자료제공 요청서’ 작성 양식 표준화 및 작성기준 명확화, 사업자의 내부 심사기능 강화 등 가이드라인을 올해 안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영장 없이 가입자 개인정보(통신자료)를 내주는 틀은 유지하되 문서양식만 표준화하겠다는 얘기다. 미래부 김주한 통신정책국장은 “외국에서도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제출받는 경우가 많다. 다만, (영장이 필수인)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요청서 양식이 자세한데, (영장이 필요없는) 통신자료 요청서는 수사기관별로 양식이 다른 데다, 기재사항이 구체적이지 않아 개선책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래부가 내놓은 대책이 현재의 ‘무조건 제출’ 관행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을 지 의문이란 점이다. 인터넷업계 한 관계자는 “표준 양식지만 쓰면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게 하겠다는 게 개선책이라니,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일침을 놨다. 미래부가 함께 언급한 ‘내부 심사기능 강화’도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미흡하게나마 내부 심사가 이뤄지고 있어야 강화라는 말이 가능할텐데, 내부 심사가 전혀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장이 필요없는 가입자 개인정보(통신자료) 제공은 갈수록 남발되고 있다. 2011년 585만명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겨졌는데, 2012년 788만명,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402만명의 기록이 넘어갔다. 포털 등이 지난해부터 정보 제공을 중단한 점을 감안하면, 통신사가 제출하는 양은 크만큼 더 늘었다는 얘기다. 반면, 영장이 필수인 통화내역(통신사실확인자료)과 감청(통신제한조치)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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