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지나자 남녁에선 눈 속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과 함께 입춘을 맞았디. 입춘은 24절기 중 맨 처음 맞는 절기로 새로운 한 해가 열리는 봄의 서곡이다. 한자로 立은 始와 같은 의미로 쓰여져 시작한다는 뜻이며 春은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는 모양을 하고있어 어느 새 봄이 오고 있다는 글풀이가 된다.

이제 뒤미쳐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경칩이 대기하고 있다. 우수(雨水)가 되면 눈이 녹기 시작하고 비가 오며 초목은 새싹이 돋는다. 또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땅 속에서 잠자던 벌레들이 깨어나며 얼음 밑에선 물고기들이 노닌다고 한다.

각 가정에선 입춘첩 또는 입춘방이라 하여 대문기둥이나 천정 등 집안 곳곳에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좋은 뜻의 문구를 써서 붙인다. 영국 시인 바이런이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않다’ 고 하였던가. 어느 새 연록색 봄이 손짓하는 듯 하다. 입춘에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소중히 여기며 이 때 받아 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던가.

처마 끝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이 봄볕에 녹기 시작하고 어린이들은 가녀린 손으로 고드름을 매만지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봄을 즐긴다. 키재기 하며 줄줄이 늘어선 고드름이 하도 신기해 추운 줄도 모르고 손뼉치며 쫑알대던 추억이 새록새록 봄소식마냥 솟아난다.

진안의 마이산 탑사에선 불자들이 새해 소망을 비는 정화수 그릇마다 고드름이 하늘을 향해 거꾸로 뻗어나고 연천 고대산에도 역(逆)고드름이 종유석처럼 올랐다잖은가. 머지않아 고즈넉이 봄볕이 잠든 곳에서는 잔설을 뚫고 노랑 복수초가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입춘시기 복과 장수를 기리는 행운의 꽃 복수초가 봄향기를 몰고오면 뒤질세라 야생화 노루귀꽃이 엄동설한의 치마를 걷히고 눈을 비비고 피어난다.

꽃말처럼 추위 속에서 인내하며 피어나는 분홍. 자주. 흰색의 향연이 꽃받침에 얹혀 노루귀처럼 털 속에서 고개를 내민다. 마치 무덤가에 허리 굽혀 피어나는 할미꽃처럼 털에 쌓여 피어난다. 옛날 세 딸을 둔 할머니가 시집간 딸들을 찾아갔건만 첫째와 둘째 딸은 잘 살면서도 인심이 야박하여 추운 겨울인대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셋째 딸 집으로 내쫒아 할머니는 눈보라 속 길을 헤매다 셋째 딸 마을 부근에서 죽게 되었다. 셋째 딸은 슬픔에 겨워 할머니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었는데 이듬 해 봄, 등이 굽은 채로 꽃으로 피어났다는 슬픈 전설을 안고 할미꽃이 피어났단다.

곧 아스라한 봄안개 속에 냉이. 달래. 씀바귀 등 상큼한 봄나물이 밥상의 미각을 돋우고 드릅 등 시고 매운 새순으로 생채요리를 하여 ‘오신반’을 만들어 먹는대 이는 임금을 중심으로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있다고 하며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증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로지 당리당략만을 쫒아 경제혁신이라는 국가시책을 도외시하는 오늘 날 정치인들이 음식을 차려 먹는 것까지 백성의 뜻을 헤아리는 선조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봄나물. 새순으로 버무린 요리를 먹고나면 추운 겨울동안 움추렸던 몸이 따사로운 봄볕에 나른하고 스르르 졸음이 오는 춘곤증에 젓기 마련이다. 졸음을 쫒다보면 버들강아지가 나무 끝에 뾰족하게 눈망울을 내밀고 봄이 송알송알 맺기 시작한다.

이 봄. 기쁜 마음으로 새봄을 맞이 해 보자. 칼럼자(者)의 시 ‘봄마중 가자’를 소개하면 “간밤 어루만지는 손길에/ 질기게 뒤척인 아침/ 교교한 아파트 상큼한 기척/ 앙상한 가지에 연록 망울 망울/ 진달래 연분홍 치마사이로/ 진홍 속살 넌지시 고개 내밀고/ 하마 꽃이 피었네/ 벗님아 봄마중 가세/ 호숫가 파란 하늘/ 부드러운 하프 춤을 추고/ 눈 뜬 개나리 철부지 목련/ 노랑 순백의 향연/ 하마 꽃이 지천일세/ 벗님아 봄마중 가세”

김지용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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