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호 한국마사회 심판위원장이 1월26일 마직막 경주 심판을 끝내고 관계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한국마사회
27년 경마심판 마침표
순위변경제 기틀 닦고, two-out제 도입

[일간투데이 강근주 기자] “경마 심판은 절대고독과 싸우는 직업이죠. 그런데도 막상 은퇴하게 되니, 시원섭섭하네요.”

1987년 한국마사회에 입사해 27년간 경마 ‘포청천’으로서 외길을 걸어온 이광호 한국마사회 심판위원장(55)이 2월5일 은퇴했다. 프로스포츠 심판은 백 번 잘했어도 한 번 삐끗하면 여론의 뭇매가 돌아온다. 반드시 필요한데,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심판의 세계에서도 경마 심판은 더욱 외롭고 힘든 자리다. 경마팬은 물론 마주와 감독, 선수 모두가 민감한 이해관계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심판 결정에 따라 수만 명의 이해관계가 명확하게 갈리는 경마에서 심판들이 갖는 심리적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나니 마음 한켠이 너무도 후련한데, 오랫동안 사명감에 살아와서인지 섭섭한 마음도 꽤 드네요.” 이광호 심판의 얘기다. 경마 심판위원들은 경주로가 한눈에 보이는 관람대 6층 심판실에서 쌍안경, 모니터를 이용해 선수들 조그만 손동작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경주를 관찰한다. ‘매의 눈’과 초인적인 집중력이 필요한 이유다. 경마에서 각종 반칙사항, 진로 방해, 선수의 능력발휘 불량, 경주 도중 이상현상을 보이는 경주마 출전취소 등 경마진행을 총괄하는 사령탑이니 그럴 만도 하다.

경주가 끝날 때마다 심판위원들은 심의에 들어간다. 위반사항이 있는 감독이나 선수의 경우 심의실로 호출해 의견을 청취하고, 수십 개의 모니터를 통해 다시 한 번 경주 장면을 분석하고 의견을 나눈 뒤 최종 심의를 결정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경주의 최종순위가 확정된다. 게다가 판정에 불만을 가진 고객이 심판실로 찾아와 서너 시간씩 끝장 토론을 벌이는 일은 예사다.

“선수나 감독은 늘 제재가 많다고 하고, 고객은 항상 제재가 적다고 하죠. 특히 악천후 시 안전에 위협받는 기수들은 경주 취소를 원하고, 상금을 받는 마주나 감독, 고객은 경주 강행을 원합니다. 이들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요. 그만큼 경마 심판은 절대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직업이죠.”

이광호 심판은 대쪽 같은 판정으로 한국경마 ‘포청천’이라 불린다. 순위변경 기준을 처음 도입해 현재 시행 중인 순위변경 제도의 기틀을 다진 장본인이어서다. 순위변경은 다른 경주마 주행을 방해한 말의 순위를 변경시키는 것을 말한다. 심판위원장 재직 중에는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경마 관계자의 two-out 제도를 도입했고, 출발 후 100M 이내 진로변경 금지 등 규정을 도입해 경마 안정성 및 공정성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지금이야 경마팬이면 상식에 속하고, 국제무대에서 통용되는 선진화된 규정이지만, 이들 규정이 정착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순위변경 기준에 따라 제주경마장에서 1·2위로 들어온 경주마를 주행방해로 판단해 도착순위를 변경하자 난동 수준의 고객 항의가 빗발치는 사건도 1991년에 일어났다. “고객을 진정시키려고 직접 관람대로 내려가 설명을 했죠. 그러자 고객들이 나를 둘러싸고 더욱 격렬히 항의하기 시작했어요. 개중에는 내 멱살을 잡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죠. 한참 설명하고 심판실로 돌아와 보니 와이셔츠 단추가 다 떨어져 있더라고요.”

규칙을 위반한 선수를 불러 심의할 때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대쪽 같은 판정을 내리는 이광호 심판이지만, 선수들을 교육할 때는 인생 선배로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멘토로 변신하는 셈이다. 경마 선수들은 “매년 진행되는 경마 공정성 교육에서 이광호 심판은 우리에게 늘 선수끼리 서로 감시자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수 잘못으로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해줬다”고 입을 모은다.

이광호 심판위원장은 은퇴 이후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외에는 27년간 주말에 쉬어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죠. 이제 가족을 위해 손수 아침밥을 차리고 싶습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서 일까.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그렇든 포커페이스 대신 희로애락이 담긴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밥벌이, 직업정신은 그에게 참 거룩했던 순례자의 길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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