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식 정치평론가/21세기한국연구소장

한국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불신해 왔다. 이것이 시민 사이의 정당한 거래를 막고, 혈연 지연 학연사회를 과잉 발전시켰다. 필자는 믿을 수 있는 것을 ‘민심’의 영역, 시민사회의 영역이라고 판단한다. 지금까지 경쟁관계만 부각됐던 백성들 사이의 인간관계가 이제 서서히 협동의 방향을 찾아나가고 있다.

정치권과 유권자들 사이도 역시 불신과 열광적인 지지가 교차한다. 한국에서 정치는 민(民)과 관(官) 사이의 역할의 재조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계보 싸움이다. 정치인들은 계보를 형성하고, 계보정치는 반드시 유권자를 배신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보편적인 법칙이다. 그 책임은 계보정치를 선호하는 그 사람들에게서 먼저 불어야 한다. 이럴 때 나온 구호가 “유권자 여러분! 여러분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권력은 가장 나쁜 놈에게 돌아갑니다”이다.

한국사회에서 민과 관 사이에는 강한 불신의 강이 흐른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한국에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가난한 백성과 그들을 억압하는 조선시대 고위 관료의 모습은 오늘날도 개혁 없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 시민혁명이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무원들의 부동산과 주식 투기가 만연하고, ‘관피아’라는 시사용어에서 우리가 다시 확인하는 것은 오늘도 권력사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식품산업 제품은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불량원료에 불량공법을 활용한다. 불량식품을 피하기 위해서 믿을 수 있는 제품의 가격은 급상승해 버린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식품은 특별관리되어야 한다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런 것이 또 하나의 유착관계를 낳는다.

한국의 여론조사 결과도 믿을 수가 없다. 여론조사 실시기관들을 보면 여러분은 여론조사를 신뢰하겠는가? 하기는 답변자가 10% 후반대 밖에 안되는 비율을 가지고, 전체 유권자의 마음을 압축하려니 이런 혼란은 쉽게 발생한다. 필자도 여론조사 결과는 지켜본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너무나도 현실과 괴리되어 있어서 위험신호로 인식될 뿐이다.

더욱이 지금 우리사회에서 정직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정직성과 경쟁력은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사태의 진심은 알 수가 없다. 진심 대신에 아부와 유대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살아남았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전통적인 문화가 오늘날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따져 보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세월호 참사사고 이후 백성들이 어떤 정보를 신뢰하는가 문제를 살피기 위해, 청계천 시위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와 공식뉴스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같은 의제에 의견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의제가 전혀 다르다. 둘 사이에는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청계천에서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한다. 민방 쪽에서는 대통령 책임은 전혀 거론하지 않고, “유병언을 잡아라” 하는 내용의 방송만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언론 현실이다. 언론은 우리의 전체 모습을 보기 위한 평면거울이다. 보도되는 의제만 보고도 다양한 뉴스와 다양한 해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까지는 인터넷에서 다양한 외신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언론들의 시각은 사실보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미 선언된 시각을 통해서 유지, 발전된다. 시각은 양극화되어 있다. 물론 한국의 인터넷은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통해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불록거울도 아니고, 오목거울도 아닌 정확한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안전한 이 나라를 안전한 사회로 바꿀 수가 있다. 정치의 문제도 민관이 함께 살아남는 방식으로 가야 개혁이 가능해진다.

김광식 정치평론가/21세기한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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