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정상에 있는 높이 2백36.7m의 서울타워(사진)는 기공 6년 만인 1975년 8월 중순 완공됐다. 남산이 해발 2백43m이니 서울타워 꼭대기까지는 4백80m에 이르는 셈이다.

KBS 등 3개 방송국의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있는 서울타워가 세워진 가장 큰 목적은 북한 방송의 전파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 타워가 건립되기 전에는 서울시내 어디에서나 북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구파발·불광동 등 북부 지역에서는 북한 TV 방송 시청도 가능했다.

69년부터 지반공사를 벌였지만 건축허가는 73년에 났다. 나는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으로서 서울타워 건축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내가 많은 건축허가 신청서 가운데 이 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서류를 갖고 온 사람이 중앙정보부 직원이었고, 그 서류에 체신부·공보부·농림부·경제기획원 등 여러 행정기관의 국장·차관·장관 도장이 빽빽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정보기관 직원이 건축허가 신청서를 들고 온 것은 북한 방송의 전파 관리 문제 때문이었지, 정보기관이 타워 건설의 주체는 아니었다. 따라서 제출한 건축허가 신청서에 적힌 사업자는 동아·동양·문화방송 등 3개 민간방송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서울타워는 건설 과정에서 송신·전파 관리 등 주된 기능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5층 규모로 지어질 전망대만 크게 보도됐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서울타워를 식사하면서 서울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장소 정도로 알았다.

공사가 거의 마무리 돼가던 74년 5월 한 한국일보 기자가 타워에 올라갔다. 송신탑에서 50m 정도 위에 있는 철탑 부분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그해 5월 12일자 한국일보에 ‘북의 땅 송악이 보인다. 북악도 성큼 수채화처럼”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본 박정희 대통령은 노발대발했다. “서울타워에서 북의 땅 송악이 보인다면 송악에서도 이 시설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긴급 회의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朴대통령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우선 북한이 서울을 사정권에 두는 장거리 대포를 개발할 경우 서울타워가 장거리포의 주요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북악이 수채화처럼 보인다면 청와대도 한 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므로 서울타워에서는 몇 자루의 고성능 총포만으로 청와대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뿐 아니라 사회부장·편집국장 등이 줄줄이 정보기관으로 연행돼 보도 저의와 배후에 대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타워 준공 소식은 우리나라 모든 언론매체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朴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일반인의 전망대 출입이 전면 금지됐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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