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식 정치평론가/21세기한국연구소장

한국의 정치인들은 보수파 또는 진보파 정치인으로 분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수파와 진보파 의원들 가운데 일부 정치인은 상대 세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 가운데, 우파 쪽 사람을 극우정치인이라고 부르고, 똑같은 논리로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 가운데 좌파 쪽 사람을 극좌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이 사람들은 상대를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반드시 무찔러야 할 적, 또는 소외시켜야 할 불순세력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는 인상을 남긴다.

반면 보수파와 진보파 정치인들 가운데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 협상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합리적 보수파, 또는 합리적 진보파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 보수파와 진보파의 합리성에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합리적인 정치세력이 되기 위해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협상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을 극우정치인, 극좌정치인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중도파도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중도적 가치는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중도파가 먼저 가치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통합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중도파는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에 협력과 대화와 협상을 모색한다.

현재 정치구도상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데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정의당이라든가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상대를 모두 보수로 보고, 자신들이 진보적인 가치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중도파는 8.15 직후 정치에는 분명히 존재했고, 큰 힘을 발휘하였다.

당시 중도우파 세력으로 김구와 임시정부 세력을 꼽을 수 있다. 중도파 세력으로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을 꼽을 수 있다. 중도좌파 세력으로 여운형 세력을 들 수 있다. 역사상으로는 일단 도산 안창호 선생을 중도파의 대부로 설정할 수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임시정부에서 장관직을 맡았을 때, 그때 한국인들에게는 좌우 양파가 모두 형성되어 있었다. 그때 우파의 대표인 이승만이 임시정부 대통령직에 취임했고, 좌파의 대표인 한인사회당의 이동휘가 총리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이때 임시정부의 실무 책임자인 안창호 선생은 좌우를 모두 끌어안는 포용의 정치를 펼쳤다. 이후 안창호 선생은 1935년 경성감옥에서 출옥했을 때, 중도좌파인 여운형과 중도우파인 조만식을 불렀다. 이들은 안창호 선생 앞에서 서로 협력을 약속하였다. 이 두 사람은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워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이 조직의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김구 선생은 중도우파 정치인, 새문안교회 장로였던 김규식 선생은 순수 중도파 정치인이었다. 이들이 그렇게 불린 이유는 김구 선생과 김규식 선생은 임시정부와 함께 분단을 반대한 중도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공산주의자로 보지는 않는다. 김구 선생은 본래 보수파 정치인이었다. 그랬다가 1942년 임시정부 내에 좌우파를 모두 참여시키면서 중도우파 정치인이 되었다. 반면 당시 임시정부의 부주석을 맡았던 김규식 선생은 끝까지 중도파 정치인으로 남는다.

결국 지금과 같이 분단질서가 오래 지속될 경우를 제외하고, 협상에 의한 통일의 경우에는 중도파가 기선을 잡지 않으면 통일은 불가능하다. 즉 남한의 자본주의자와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고, 거기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중도파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수-진보, 좌와 우,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세력들 사이에 중도파 역할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김광식 정치평론가/21세기한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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