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소비자원 조정 '무시'...법적 강제성 없어

[일간투데이 조창용 기자] 앞으로 소비자 분쟁은 법원 소송으로 직행하는 비율이 늘어날 것 같다. 대기업들이 소비자원 중재기능을 불신하여 조정권고를 무시하기 일 쑤기 때문.

22일 국민일보와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원이 21일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10대 기업 분쟁조정 현황'에서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 자세한 내용을 보면 2009년 10대 기업 관련 총 122건 조정 결정이 내려졌고 이 중 116건의 조정이 성립돼 95%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러나 조정 결정 성공률은 2010년 80.9%, 2012년 73.8%를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61.1%까지 급락했다.

소비자원은 소비자가 문제제기하면 조사를 통해 1차로 합의 권고를 내린다. 합의가 안 되면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90일 이내 조정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수용하지 않으면 조정이 결렬되고 소송 등 다음 절차로 넘어가게 된다.

최근 10대 기업의 조정 결정 성공률이 급락한 이유는 기업이 소비자원의 조정 결정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0대 기업의 조정 결정 불복 건수는 전체 122건 중 2건(1.6%)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9.5%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전체 89건 중 27건이나 수락을 거부해 불복률이 30.3%까지 높아졌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조정 결정 8건 중 3건(37.5%)만 받아들여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 한화 0%, GS 25.0%, SK 69.7% 등 주요 기업들의 조정 결정 수용률이 저조했다. GS는 홈쇼핑에서 판매한 화장품 사용 후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이 나왔지만 모두 거부했다. SK도 이동통신 서비스 계약 해지나 단말기 대금청구 문제 관련 계약을 해제하라는 소비자원의 결정에 대부분 불복했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2009년과 2010년에는 조정 결정을 대부분 받아들이다 이후 불복하는 경우가 급속히 늘고 있다. 2013년에는 차량 하자나 부식된 차량 수리 요구 등에 대한 소비자원의 배상 및 수리·보수 조정 결정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에도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차량에 대한 소비자원의 교환 결정을 수락하지 않았다. 항공기 운항 지연에 따른 분쟁이 많았던 한진도 2009년에는 조정 결정을 모두 받아들였으나 이후에는 관련 손해배상 조정 결정에 모두 불복했다.

기업별로 지난 5년간 가장 많은 소비자 분쟁이 발생한 대기업은 SK(87건) 한진(85건) LG(65건) 등이었다. 이들 기업의 조정 결정 수용률은 78∼90% 사이로 비교적 높았다. CJ는 지난 5년간 9건의 조정 결정을 모두 받아들여 100% 수락률을 보였고 삼성과 LG의 조정 결정 수용률도 각각 86.6%, 86.1%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5년간 31건의 조정 결정 중 18건(58.0%)만 조정이 성립됐다. GS와 롯데의 조정 성립 비율도 각각 60.0%와 66.6%에 그쳤다.

정 의원은 “소비자원의 분쟁조정은 강제조정 권한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무시해도 제재할 수 없다”며 “조정 결정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입법 추진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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