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구원파여, ‘구원’을 묻노라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 失樂園)은 구약성서를 소재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추방을 주제로 인간의 ‘원죄’를 묘사하고 있다. 영국의 시인 밀턴(John Milton)이 1667년 간행한 12권의 이 장편 서사시는 한때 정치적 위기로 집필을 포기할 뻔 하기도 했다. 참여한 공화제가 실패한 데 이어 설상가상으로 밀턴은 시력까지 잃어 불운에 빠지는 악운을 겪었다. 하지만 밀턴은 다시 시작(詩作)활동을 시작하여 이 거대한 작품을 구술(口述)로써 완성하였다. 이 서사시에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가능성이라는 내용을 담는 어려운 과제를 작자는 훌륭하게 완수해 낸 것이다.

1, 2권에서는 신(神)에 거역하여 지옥에 떨어져 낙원에 사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 복수하려는 ‘사탄’을 그리고 있다. 이어 3, 4권에서는 에덴낙원의 축복을 노래하였다. 9권에서는 뱀으로 변신한 사탄의 유혹에 무너지고 만다. 10권에서는 죄를 짓고 난 다음 찾아오는 재앙, 그리고 11.12권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신의 섭리를 믿으며 낙원을 떠나는 그야말로 ‘실낙원’이다.

전편을 통하여 밀턴의 강렬한 상상력이 돋보였고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대시인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밀턴은 이 작품에 이어 ‘복낙원’(Paradise Regained ․復樂園)을 쓰기도 했다. 실낙원의 속편형식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탄의 유혹을 주제로 하여 지상 낙원이 다시 인간에게 회복될 때까지의 대서사시이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 개개인에 내재된 구원의 힘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낙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업가 전낙원(田樂園)씨는 78세를 일기로 2004년 타계한 기업인 겸 교육자이자 관광업자다.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파라다이스 그룹의 창업주로 한때 ‘카지노의 대부’라는 별칭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법인 계원학원을 세워 국내 문화예술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전국에 파라다이스 호텔 체인을 가지고 있었고 그 수익금으로 비영리 재단을 통해 사회 공익사업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파라다이스(樂園)’의 족적을 남겼다.

반면 국경을 넘나들며 불법을 일삼던 태국의 마약보스가 경찰에 체포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유치장에 수감되자 영자신문에 그의 사진과 함께 ‘실낙원(Paradise Lost)’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이 나붙었다. 실낙원이란 단어는 ‘부귀영화가 한 순간에 사라지다’라는 수사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범으로 취급되어 포커스를 받던 유병언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온갖 호사를 누리며 불사신처럼 여겨지던 그가 허무하게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이다. 그의 사체에서 ‘로로피아나’ 등 고가의 명품에다 수 천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이태리제 상의재킷이 발견되었으며 신발도 ‘와시바’라는 고가의 명품으로 밝혀졌다. 그야말로 구원파의 수장이 구원과는 거리가 먼 ‘실낙원’으로 직행한 것이다.

용인의 한 오피스텔에서 체포된 그의 장남 유대균씨의 사치도 극에 달했다. 그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역삼동의 한 레스토랑엔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얼굴을 빚은 청동상을 비롯한 각종 진귀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고 했다. 유씨가 해외에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곳에 수 천점의 고급시계들도 전시해 놓았는데, 그가 특히 좋아한 명품 브랜드는 ‘파텍필립 곤돌로’로 최고 5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대균 씨의 취미 활동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캐나다의 한 마을을 통째로 사들인 뒤 마을 곳곳을 조각의 재료로 삼았다고 한다. 직접 포클레인을 운전하며
마을 곳곳에 ‘대지 조각’까지 했다고 하니 일정한 직업도 없는 그가 그처럼 호사를 누렸을까
유병언의 장례식이 어제 금수원에서 구원파 신도들의 애도 속에 거행되었다.

이제 그들의 낙원은 그들만의 사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다. 인간의 사치와 타락을 일순간에 휩쓸어 버린 ‘노아의 방주’가 오버랩 되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도 진정한 ‘구원의 길’은 과연 무엇인가 되돌아 볼 기회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복락원의 메시지가 새삼 떠오를 뿐이다.

김 지 용(편집이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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