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여의도 비둘기 “거짓말이야” 운다

헤르메스(Hermes)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열두 신(神) 중 전령의 신이다. 이 헤르메스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Mai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우스의 아들이라기보다 메신저(使者)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그는 신과 인간의 소통을 담당하여, 제우스가 시키는 온갖 궂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로마신화의 대응신은 수은(水銀), 수성(水星)의 뜻을 가진 머큐리(Mercury)이다.

어느 날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불러 “인간세상이 너무 고지식하고 정직하여 재미가 없으니 거짓말하는 약(藥)을 곳곳에 뿌려주고 오너라.”하고 지시를 내린다. 헤르메스는 곧 명을 받들어 인간 세상에 ‘거짓말 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이 하도 힘들고 끝이 없어 싫증이 나자 꾀를 냈다. 제우스가 잠든 틈을 노려 남은 약을 한군데 모두 쏟아 부어 버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짓말 약을 잔뜩 뒤집어 쓴 곳에서 정치인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누군가 웃자고 꾸며낸 얘기겠지만, 최근의 정치행태를 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숙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당선되고 보자”는 욕심에서 실현 불가능한 장밋빛 공약을 내놓게 마련이다. 누가 봐도 황당한 내용이지만, 유권자들은 곧잘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다. 그래서 찍어주고 종래는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 나라 국민수준을 알려면 국회의원을 만나보라는 말이 이러한 연유에서 나온 것이리라.
국회의원들의 얼굴사진을 벽면에 잔뜩 붙여 놓고 공기총으로 쏘아 맞추는 ‘통쾌한 행위예술(an incisive performance art)’이 몇 해 전 체코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두 전위예술가가 프라하의 한 갤러리에서 벌인 퍼포먼스다. 수많은 공약들을 내걸었다가 식언(食言)하는 정치인들을 유권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란다.

예상대로 전시장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거의 모든 사진이 공기총알에 짓이겨져 손상됐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정당지도자들의 사진은 얼굴 대부분이 공기총을 맞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행위예술을 기획한 예술가들은 산산조각 난 사진들을 국회의원들에게 보내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회의원들은 볼멘소리를 냈다. “사람 사진에 총을 쏘는 것은 예술의 수준을 넘은 폭력”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정치인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기획 자체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우리 정치상황을 보면 이 퍼포먼스가 등장하기 충분하다는 느낌이다.

‘회기 중이라면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의원은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특권의 문제로 국회가 어수선 해졌다.
세월호 특별법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방탄 국회'에 매달리는 모습이 또 한 번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자정 1분 전에 부랴부랴 국회소집을 요구, 국회를 열어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 구하기’ 가 실현됐으나 마지막 해당 국회의원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는지 자진출두하는 모양새를 보여줬다.

불체포특권을 이용하려는 얄퍅한 노림수는 급기야 철도비리 송광호 의원의 국회 체포동의안 부결이라는 횡포를 저질렀다.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들이 비리혐의가 드러나도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의원들 자신도 언젠가 본인에게도 화살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에서 불체포의 방어막으로 보호해주는 ‘동료애’를 발휘한 것이다.

이래 놓고 새 정치를 외친들 귀담아들을 국민은 없다. 수사대상이 된 의원들은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결백하다면 떳떳이 검찰에 나가 돈을 받지 않았음을 입증해 보이면 될 일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불체포특권은 절대군주가 자신의 의견에 맞서는 의원들을 체포하면서 비롯됐다. 행정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의원활동을 보장하기위한 민주적 제도였다. 이것이 오늘날 의원 개인비리를 덮는 수단으로 악용될 줄이야 알았겠는가. 어느 때 시인 유안진의 글을 읽을 기회가 있있다. 가까운 친구 중에 “거짓말이야”라는 노래가 애창곡이었다는 말과 함께 여의도 비들기의 울음은 “거짓말이야” 하고 운다고 했단다. 거짓말의 대명사가 된 국회의원들은 비정상의 정상 대상이 되지말고 자성하는 의원으로 거듭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제 오늘부터 본격 정치무대가 열릴 것으로 짐작되는데 추석민심을 확인한 여야 정치인들은 국민의 요구를 헤아려 정상적으로 정기국회를 열어 국회일정에 충실할 것을 기대한다. . 그 때 비로서 비둘기도 바르게 우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김 지 용(편집이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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