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용 일간투데이 논설실장

[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아베의 검은 그림자

모처럼 영화관에서 ‘명량’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구국에찬 고뇌와 ‘필생즉사.필사즉생’(必生卽死,必死卽生)을 실감했다. 영화가 끝난 후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역시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되뇌이는 중에 ‘아베 역사관의 뿌리 조슈를 가다’라는 최근 한 일간지에 실린 일본 야마구치(山口) 견문기의 제목이 떠 올랐다


야마구치는 일본열도 혼슈(本州)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남단 중의 남단이 시모노세키(下關)로 부산과 최단거리이어서 ‘관부(釜關)연락선’의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19세기 메이지 유신이후 소위 폐번치현(廃藩置県)으로 지금은 야마구치라 부르지만, 옛날엔 조슈(長州)번(藩)이었다. 지금도 조후(長府)라는 지번(支藩)이 남아있다.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은 굴곡의 일본 근대사이자 한편의 드라마다. 그 드라마의 본고장이 바로 조슈인 것이다.

“아베의 역사 도발엔 쇼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드라마의 중심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있다. 불꽃같은 29년 인생을 살다 간 그는, 유신의 이론을 만들고 그 주역들을 길러내는데 기여를 했다. 결국 유신은 일본제국의 국수주의 이념인 동시에 그 국수주의의 재현을 꿈꾸는 지금의 일본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있는 것이다. 그가 쇼인의 숭배자라니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 발상인가.

쇼인의 시대는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말기다. 에도(江戶 ․ 지금의 도쿄) 앞바다에 페리제독의 ‘구로부네(黑船)’가 뜨자 일본은 공포에 휩싸였다. 마침내 막부(幕府)를 없앤 이후 천왕을 받들어 외세를 물리치자(尊王攘夷)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 결국 피를 부르고 말았다.

일본 사무라이의 ‘명문’은 혼슈의 야마구치와 규슈 남단의 사쓰마(薩摩 ․ 지금의 가고시마)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곳은 서양 배가 많이 드나들어 서구문명을 일찍 받아들인 곳이다. 소위 유신삼걸(維新三傑) 중의 한사람이자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사쓰마 출신의 무사였다.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그도 쇼인이 끌어들인 인물이다.

지금도 야마구치엔 쇼인의 사설학당 ‘쇼인 신사’가 있는데 쇼인의 밀랍인형이 유령처럼 노려보고 있는 ‘요시다 쇼인 역사관’으로 꾸며져 있다. 오죽하면 20년 전엔 아키히도(德仁) 일왕도 이곳을 찾았을 정도이다.

‘움직일 땐 번개, 일어설 때는 비바람’ 이 말은 쇼인 학당의 수재자 다카스기 신사쿠(晉作)의 좌우명이다. 그는 신개념의 ‘신사쿠 기병대’를 만들어 유신을 완수한 풍운아이기도 하다. 정작 쇼인은 유신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신사쿠를 존경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기병대의 일원이었다. 아베신조(晉三)의 ‘신(晉)’자는 신사쿠(晉作)에서 따왔을 정도이니 그의 신념과 우경화의 깃발을 알만도 하다.

야마구치 출신의 일본총리는 아베까지 모두 8명이다.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寺內), 사토 에이사쿠(佐藤英作)에다가 아베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등 그 ‘화려한 인물’들이 조슈 군벌의 핵심주역이며 아베 역사관의 뿌리이기도 하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야마구치의 정한론(征韓論)과 탈아론(脫亞論)은 지정학적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야마구치의 역사는 늘 가슴앓이를 했을 것이며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의 주범 미우라(三浦) 공사도 역시 야마구치 출신이다.

미우라는 야마구치 현에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기병대(奇兵隊)에 입대한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인물이다. 1886년 귀국하여 육군개혁 건의서를 제출했으나, 이듬 해 구마모토 주둔 사령관으로 좌천되고 말았다. 이후 주한일본공사에 취임하여 친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군과 경찰, 낭인(浪人)들을 동원,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시신을 불태우는 범행을 저질러 국제적 범죄로 지목된 범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을 알리없는 후세들은 오늘 날 부관페리를 타고 야마구치 관광을 즐기며 살고 있는 시대이다. 기왕이면 아베의 속셈과 그들의 역사를 되밟아 보고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아베는 모리를 통해 친서를 박근혜 대통령에 보내며 겉으로는 한일 정상회담을 노리고 속으로는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는 아랑곳없이 일본 제국주의의 그림자만을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김 지 용(편집이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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