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투데이 김지용 기자] 인문학에 길을 묻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이따금 일간신문 오피니언 페이지에 필자의 이름과 함께 낯선 직함이 눈에 띈다. 경희사이버대학교는 지난 2012년 봄 교양과정을 전면 개편하면서 새로운 교양교육 프로그램인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출범시켰다. 이미 시행하고 있던 교양교육과정을 온라인 시스템에 맞도록 재설계한 것이다.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성’이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문명을 만드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단어는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경희대가 대학생들의 교양교육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후마니스타 칼리지는 최근 ‘취업학원’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대학사회에 경고음을 던져주고 있다.

후마니타스에서 유래한 인문과학(Humanities)은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분야다. 정치. 경제. 역사 .학예 등 인간과 인류문화에 관한 정신과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는 동시에 이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기원전 55년께 키케로가 시도한 웅변가 양성 과정에서 ‘후마니타스’를 처음 사용했다. 중세 초기 성직자들은 후마니타스를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육 과정으로 채택하여 교양과목이라 고 불렀다. 그런 연유에서 인문학적 토대가 튼튼한 선진국은 계속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문학이란 철학과 역사, 사회와 언어, 문학 등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 연극과 영화도 인문학에 포함될 수 있다. 연출자는 그것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삶의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본연을 깨닫는 자체가 인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문학은 자연과학. 사회과학이 경험적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하고 있다. 한때 첨단기술이 중요한 카테고리로 이해됐다면, 요즘엔 인간의 실생활에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개발해야만 하는 명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를테면 인텔 컴퓨터의 사양이 전 세계 시장의 화두였다면 최근엔 카카오톡, 페이스 북처럼 실용성이 있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을 개척해야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정신적인 면보다 물질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인류의 정신문화적 산물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게 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창립하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창안해냈던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는 “인문학이 없이는 나도,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다.”고 술회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이름을 딴 빌 게이츠 재단을 통해 ‘작은 도서관’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유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다는 겁니다.”
뉴욕에서 생계형 범죄로 수감된 한 여죄수의 말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나 공연, 세미나 등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이나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 입사의 첫 관문이자 ‘삼성고시’로 불리는 이른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도 역사 등 인문학이 대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신 기술과 관련된 상식은 물론, 한국사에 이어 철학과 세계사를 혼용한 문제까지 출제, 역대 최고의 난이도를 선보였다고 한다.
인문학 · 역사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별하는 기업들의 최근 경향은 하반기 SSAT에서도 이어졌다. 응시생들은 역사와 세계사 비중이 높아졌고, 기술문제도 출제되어 전반적으로 시험이 어려웠다는 평가다.

한때 물질만능사상에서 기초학문으로 천대받고 학계에서 마저 따돌림을 당해 대학교에서 폐과되는 신세로 전락했던 인문학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양상이다. 이와같이 인문학은 서양에서 중세교육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전환점이 발생, 실용적이기 보다는 학문적인 과목으로 간주되었고 20세기에는 민주사회의 평등원칙에 적합한 용어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까지 발전하고 있다.


김 지 용(편집이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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