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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쟈스민 차에의 초대라이너 쿤체의 ‘한잔 쟈스민 차에의 초대’ 전문
  • 이상영 기자
  • 승인 2014.12.21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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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향기 국문학 박사, 시인, 경기대교수

[일간투데이 이상영 기자] 들어오셔요, 벗어 놓으셔요 당신의 근심을, 여기서는 침묵하셔도 좋습니다

-라이너 쿤체의 ‘한잔 쟈스민 차에의 초대’ 전문

마음의 내란이 일적마다 이 시는 내 마음의 내란을 종식 시켜주었다.

우연인지 독일시인, 라이너 쿤체가 대문을 활짝 열며 초대해준 여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친구는 노상 푸르기만 한 정원에 놓인 의자를 손질하고, 아이들과 남편은 휴가를 떠났다. 그래서 친구 집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하다. 오전 내내 친구 집에서 책을 본다.『사랑에 대한 칼 융의 아포리즘』을 본다. 이 책에서 융은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신과 같다. 이 둘은 모두 가장 용감한 종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말한다. 암, 그렇고 말구. 나는 맞장구를 친다.

감기 기운이 있던 나에게 친구는 어느 새 따끈한 캄모마일 차를 끓여다 놓는다. 마시면 이완된다며 억지로 차를 마시게 한다. 깔깔했던 목이 시원해지자 집에서 가까운 ‘Kaufhof’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자는 것이다. 한참을 구경하다 4층 그릇매점에서 아랍풍의 독특한 도자기 촛대에 눈길이 꽂혔다. 얼마죠? 30유로! 주세요. Just moment! 포장할 때 필요한 이 물건의 프라스틱 케이스가 있었는데 마침 지금은 남은 것이 없으니 점장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며 나간다. 한참 만에 돌아온 점원이 케이스가 없는 관계로 15유로에 줄 테니 사갈 거냐고.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그것도 정가에 반값인데. 당근! 이런 횡재수라면 언제나 오케이다.

‘정품’의 범주란 마지막 포장까지 포함하는 것이 선진국의 정서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스템이 제도화되어야 정말 선진국다운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싸게 사서 물론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낯선 인격(독일)에 대한 선망이랄까, 그런 제도를 보고는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음날 아침이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로 이어지는 주크슈피체산맥. 독일에서 제일 높은 산맥을 왼편으로 바라보며 달린다. 뷔르쯔부르그에서 기차타고 2시간. 이제 10분만가면 휘센역이다. 다시 이곳에서 버스로 갈아타면 ‘노이슈반스타인’성으로 가는 여정이다. 모든 동화책 속의 성과 디즈니랜드 성의 모델인 ‘백조의 성’이다. 멀리서 보면 백조 같고, 바짝 가서 보면 독일식으로 무뚝뚝하고, 실내로 들어가 보면 스토리텔링의 완전한 오페라 무대다.

옛날옛날 루드비히 2세라는 바이에른의 왕이 살았다. 왕위 계승자 일 때 궁중극장에서 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일생동안 바그너의 후원자로 남았다. 절대적인 왕권에 실증을 느낀 왕은 이상으로 채워진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건설하는데 일생을 걸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유난히 좋아한 이 동화의 왕은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장면들의 성을 짓고 싶어 했다. 마침내 바그너의 소리를 훔쳐 음악의 성을 쌓아올렸다. ‘백조의 성’은 소망처럼 천정과 벽화는 오페라의 스토리를 그림으로 완벽하게 장식하였다. 여성스럽던 왕은 특히 오페라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성 안의 문고리란 문고리는 모두 백조로 조각했고 벽화와 커튼의 장식에도 많은 백조를 그려 넣었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그렇게 좋아하던 바그너는 초청해보지도 못하고 왕좌에서 쫓겨난다. 그의 취향은 숭고했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삶은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비운에 너무 상심한 왕은 성에서 늘 바라다보던 아름다운 호수, 슈타른베르거에 몸을 던진다. 사망할 때까지 그는 완벽한 허구를 찾았다. 백조의 성에 담긴 과거를 연출한 대작은 오늘날 그 어느 오페라보다도 큰 감동을 준다. 바그너의 오페라 중에 나오는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처럼.

루드비히 2세가 대 음악가 ‘바그너’에게 헌정한 ‘노이슈반스타인성’은 5층으로 로맨틱 양식으로 지어진(1869~1886)것이다. 중세 성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들 말한다. 실내로 들어가면 무게 900kg의 샹들리에가 눈부신 방, 화려하게 도금된 탁자는 용과 싸우는 지그프리트이며, 조각가 14명이 4년 6개월을 만든 정교한 떡갈나무 침대가 있는 침실은 침실이 아니라 작품 전시장 같다. 또한 대단한 미식가였던 왕은 음식이 식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래서 주방으로부터 직접 음식이 배달되는 최신식 식당을 마련했다. 냉 온수는 물론 전자동으로 그릴구이 꼬치가 돌아갈 때 나오는 연기는 바닥 아래로 배출하도록 설계했다. 그리고 실내의 모든 벽은 바그너 오페라의 무대 배경이다. 아니 무대 그 자체다. 나머지 방들에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겐의 반지>, <로엔그린>, <탄호이저>, <성악가들의 축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 영웅들로 독일 중세 문학이 유일하게 생생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성소다.

세기의 사학자들은 말한다. 루드비히 2세가 바그너를 영원히 후원하지 않았다면 바그너는 한낮 이름 없는 가난하고 볼품없는 음악가로 기억의 저편으로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라고. ‘노이슈반스타인성’의 견학만으로 따분하다면 포르크겐 호반의 전용 뮤지컬 극장에 가 볼 일이다. 상설공연중인 인기 있는 루드비히 2세의 극적인 생애를 그린 에 다시 한 번 정신을 빼앗겨도 좋았다.

보나파르트주의와 권위주의를 비난하며 소설『노트르담의 꼽추』(1831)·『레 미제라블』(1862)를 쓴 프랑스의 낭만파 시인 빅토르위고의 사랑시를 그토록 좋아한 스위스 심리학자인 칼 구스타브 융이 괴테의 외 증손자라는 설과, 괴테의 사생아 쪽 증손자라는 소문이 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참 흥미로운 이야기임에 틀림없었다. 현지 친구에게서 얻은 수확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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