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간투데이 논설위원.
[일간투데이 최원일 논설위원] 새해 초 금연을 결심하며 강행한지 두 달이 다 돼 간다. 틈만 나면 껌을 씹고 금연 패치도 사고 전자담배도 선물 받아 열심히 참고 또 참았다. 근데 요즘 들어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차츰 해이감이 들기도 한다. 어느덧 오른 담뱃값에 다들 익숙해져 가는 분위기가 밴 탓일까? 많은 직장인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2000원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들린다. 진짜 금연고비는 지금부터다. 초지일관 처음 먹은 마음 변치 않는 게 중요하다. 먼저 금연을 실천한 선배로써 지금 고심하는 분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도록 ‘나의 금연기’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담배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 많죠.

오랜 습관으로 몸에 완전히 스며든 니코틴 중독현상이 심상치 않죠. 줄여 보려고 하면 더 피고 싶은 게 담배이기 때문이죠. 집에서는 마나님과 아이들이 피지 말라 성화고, 직장에선 옆 동료들의 눈총 피하기 힘들고.

이참에 더러워서 담배 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분들께 제 경험을 전할게요. 참고하셔서 꼭 성공하길 바랍니다.

전 대학 들어가면서 피우기 시작했고 군입대해서 부터는 확실하게 몸에 붙이고 살았죠.

졸병시절 월남전에 참전해서 4시간 보초 근무 설 땐 3갑을 태운적도 있죠. 그땐 입이 너무 써서 뻐끔 뻐끔 줄 담배 질을 해댔죠. 군 제대후 복학해서 취업 준비할 때 역시 가장 옆 위로자는 담배가 최고 아닙니까?

1972년말 오일 쇼크 무렵 4학년 후학기 인문계(신문학과 입학, 복학하니 신문방송과로 바뀌었음) 출신을 받아 주는 곳은 제약사 영업직과 신문방송사 몇 군데 뿐이었죠.

10여개 업체에 원서를 내 몇 군데 시험 친 결과, 다행히 졸업 전에 원하던 신문사로 확정되고 3월초부터 출근하게 됐죠.

그 후 첫 직장에서 신문기자 생활 25년. 사람들 만나고 얘기하고 친분 쌓는 게 직업인데 담배를 얼마나 뿜어 댓겠습니까? 그 당시는 얼굴만 보면 담배 권하는 게 인사였죠. 흡연이 문제시되는 풍토는 한참지난 뒤 일이고 하니 자연스레 꼴초가 돼 가는거죠.

한번 예외는 있었죠. 유럽취재 중이던 84년 LA올림픽이 한창일 때 포르투갈 리스본을 출발한 런던 행 비행기 안에서 옆에 앉은 초등 저학년아이가 날더러 “아 유 스모커” 하길래 무심결에 가볍게 “예스”라고 했더니 주변이 떠들석 하도록 난리를 피는 거에요.

자기일행더러 이 아저씨가 스모커라고 얼마나 호들갑을 치던지 주위사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해서 “돈 워리, 아임 낫 스모킹 히어”하고 큰소릴 쳤죠.

저로서는 상당히 당황했던 순간이었죠. 30년 전 당시 우리정서로는 별것 아닌 흡연이 유럽에서는 이미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었던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20년 이상 꾸준히 피워댔죠. 주량은 약하지만 술자리에서나 특히 기자들이 즐기는 포커판이나 고스톱 할땐 엄청 품어댔지요.

그러면서 일선기자, 차장을 거쳐 부장 승진해 데스크로 일할 때 당시 편집을 총괄하시는 임원께서 부장들은 담배 끊도록 강력히 권유하셨죠. 자신은 시거를 즐겨 피울 정도로 애연가였던 분이 금연 강조하니 우습기도 했죠. 사내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갈 무렵 제 건강에도 약간 이상기미가 있었죠.

회의 중이나 또는 중요한 손님과 면담 때 등 긴장하는 순간 가끔씩 마른기침이 나오면 참기가 힘들었죠. 자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서너 달에 한번정도 증세가 나타나면 가슴이 좀 땡기는 것 같고 하여튼 신경이 쓰였죠. 그러던 가운데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죠.

후배기자 가운데 절친하던 한 친구가 어느 날 금연했다며 벌써 보름쯤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껌과 홍삼 절편을 꺼내 깨물기 시작하는 겁니다. 담배생각 날 때 대신 씹으라고 집에서 챙겨 준거라며 선배도 한번 끊어 보라고 권하더군요.

후배기자의 금연권유를 받고서 잠간 생각했죠. 나보다 훨씬 더 골초가 저런 결심을 했는데 나는 뭐냐? 좋다. 이 기회에 한번 도전해보자. 이런 생각을 갖고 후배와 내기를 하기에 이릅니다. ‘두 사람 중 누구든지 담배 피다 걸리면 10만원 벌금’ 이렇게 약속했죠.

서로 약속한 그 다음날 아침 커피 배달(당시는 출근하면 인근 다방에 인원수대로 커피주문해서 한잔씩 마시고 일 시작했음, 자판기는 한참 후에 나옴) 온 다방 아가씨가 껌 열통들이 한 상자를 저에게 주는 거에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니 저쪽 기자분이 주문했다며 어제 약속한 후배를 가리키더군요. 이른바 금연 축하선물까지 받은 셈이죠. 이렇게 해서 저의 금연은 시작됐습니다. 그 후로 20여년이 지났지만 그새 한 개피도 피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지요.

이제부터가 확실한 비결입니다. 결코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의지만 있으면 쉬울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금연하기 전엔 담배 끊겠다 생각해 본적 없었죠. 단 한차례 개피 수 줄여 보려고 한 시간에 한대만 피자고 이틀정도 신경 쓴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나보다 더 피워대던 후배기자가 금연하는 모습을 대하고 동참한 것이 전부죠. 거기에 동조해서 함께 하기로 하고 내기를 했던 게 시발이 돼 20년 이상 유지한 거죠.

평소 아끼던 라이터와 담배 갑을 집어 던진 후에 최초 한 시간을 버텼죠.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생각이 나는데 참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껌을 계속 씹고 과자를 사서 우물우물해 보고 약국에서 향내 나는 파이프를 구해 입에 물어보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요.

가장 힘들었던 게 식후 화장실에서 맛보던 그 맛, 그 것 잊기가 제일 힘들었죠. 그 다음이 커피마시고 느긋하게 뿜어대던 순간, 이건 연애시절 집사람이 폼 좋다고 칭찬까지 해주었던 모습인데 그걸 떨쳐내기가 어려웠지요.

그래서 담배 생각날 때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향 파이프를 이빨사이에 끼고 이를 악물곤 했죠. 내가 지금까지 몇 시간을 참았는데…. 며칠을 버텼는데, 몇 주를, 이제 몇 달째 됐는데, 이러면서 계속 시간을 끌었죠.
그러다보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젠 담배 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것하나 마음대로 못한다면 뭐에 써먹겠나 하는 독한 마음을 품게 됐죠.

그런 과정을 거쳐 6개월쯤 지났을 무렵 저와 내기를 한 후배는 버틸 만큼 버텨봤는데 너무 힘들다며 포기하기에 이르렀죠. 한번 끊었다가 다시 물게 되면 그때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피게 되더군요.

신체구조상 빼낸 니코틴보다 더 많은 양을 몸에서 요구한다는 전문의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후배의 모습에서 그걸 볼 수 있었죠. 벌칙위약금 대신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나도 중도에 포기한다면 저 모습일가 하는 생각이 드니 스스로 싫어지더군요. 그래서 전 이대로 후퇴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갖고 내친김에 끝장을 보자고 결심하게 됩니다.

1년쯤 지나니 웬만하면 참을 만 하게 됐죠. 향 파이프를 물지 않아도 괜찮아졌을 무렵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에서 열렸죠. 남북분단이후 첫 번째 기자단이 평양에 가서 ‘여기는 평양,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라는 기사를 보내 온 것 연세 드신 분들은 기억나시죠.

그 다음 2차로 저희 신문사에선 제가 평양특파기자로 선정됐죠. 그해 11월 워커힐에서 적십자회담이 열렸고 북대표단이 명동거리와 명동 롯데백화점을 방문했던 때였죠.

그때 북대표단 동행취재를 했죠. 다음해 2월 평양에서 적십자회담이 잡혔고 평양회담 때 풀기자로 예정된 거죠. 서울에 온 북대표단과 행동을 함께하며 식사도 여러 차례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하곤 했지요. 그들을 자꾸 보고 접촉해서 친해지도록 그렇게 했던 거죠.

함께 식사하던 그 자리에서 북측대표 한사람이 그럴듯해 보이는 북한산 담배 한 갑을 꺼내 수령께서 애용하시는 담밴데 맛보겠느냐고 권하더군요.

북 인사로부터 북한 수령이 애용한다는 담배를 피우도록 권유받고 잠시 고민했죠. 수령담배를 언제 피워보겠어요. 다시는 안 올 좋은 기회인데 한대쯤 어떠랴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죠.

그래 입에 물고 불을 막 댕기려던 순간 본부테이블에서 다음순서를 알리는 멘트가 나오더군요. 그러자 아차 싶은 생각에 물었던 담배를 내려놓고 유혹을 떨쳐버렸죠. 금연 후 첫 위기를 잘 넘긴 셈이라 할까요.

이듬해 북측이 한미 팀 스피리트 작전을 트집삼아 적십자회담이 무산돼 평양을 가진 못했지만 제 금연과정에서 좋은 교훈이 됐던 사건이라 할 수 있죠. 이후 지금까지 한 개피도 입에 대지 않고 순탄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제 경험으론 피우는 개피 수 줄이는 것 보단 단칼에 끊어야 합니다. 개피 수줄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더 피게 되죠. 주변에서 그런 분 많이 봤죠. 참고 또 참으면 길이 열리고 점차 생각에서 멀어져 갑니다. 피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면서 꼭 헤아리는 겁니다. 내가 이 순간까지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는데 지금 무너지면 얼마나 허무한가? 이래선 절대 안 된다고 마음을 굳게 다그쳐야 합니다.

한 대만 피면 어떠랴 하다간 그게 바로 사람 잡게 되죠. 고생고생 하며 버텨온 것 한꺼번에 무너지죠. 하나가 둘이 되고 한 갑 두 갑으로 이어지면 결국 주저앉게 되는 것은 정해진 코스라 봅니다.

그 과정에서 제 경우는 심한 가래를 엄청 품어냈죠. 금연한지 이틀 후부터 가래덩어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색갈이 짙어지더군요. 한 달 쯤 됐을 땐 새까만 덩어리가 며칠 계속 나오다가 멈추었죠. 전문가 얘기로는 그동안 기관지에 뭉쳐있던 가래덩어리가 조금씩 흘러 한 달 이상 나온 거라 하더군요. 흡연으로 인해 불편하던 목이 한결 부드러워 진거죠.

담배 끊어 주변이 깨끗해지고 건강도 좋아졌죠. 해마다 2~3번 감기 때문에 병원엘 다녔는데 금연 후 5년 정도 감기가 붙질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집사람과 아이들이 좋아한 것도 덤으로 얻었지요.

다만 한 가지 금연 20년이 지난 현재도 고치지 못한 게 있죠. 와이셔츠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를 함께 넣어 다니던 포켓엔 지금도 수첩을 넣어 허전함을 잊고 있답니다. 이건 흡연과는 상관없는 습관이긴 하지만….
제 나름대로 결론을 내보면 담배는 습관입니다.

식사 후 한대, 커피나 음료 마신 후 당연히 한 대, 책 보다가, 글 쓰다가 한 대, 특히 고스톱·포커 같은 놀이판이나 술좌석에선 으레 줄담배가 이어지죠. 냉정하게 생각해 보세요. 이게 다 습관성이죠. 전에 이러 했으니까 지금도 이래야 하는 것 이게 습관이 아니면 뭡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지저분하고 주변에서 싫어하는 흡연, 이젠 마땅히 앉거나 서서라도 담배 필자리가 없지 않아요. 이참에 더러워서라도 과감하게 떨쳐 버리세요.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금연하기로 결심한 당신 꼭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금연하다가 다시 마음이 약해지면 되새기고 또 되새겨보며 꼭 목표에 이르도록 독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 친구 담배 끊다니 진짜 독종이다. 이런 얘길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들어야만 당신은 진짜 금연에 성공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신문광고란에 가끔 소개되는 ”금연,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에 나오는 ‘금연하면 좋은 10가지’가 마음에 들어 함께 보시길 권하며 이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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