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 주필

▲ 황종택 주필

정치권 전체가 이른바 ‘성완종 살생부’의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성완종 리스트’의 거센 후폭풍이다. 해외 자원개발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의 글자수 55자와 육성 녹음이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진다면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한꺼번에 비리에 연루되는 셈이다. 야당 인사 또한 예외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우리 정치사 최대의 부패 스캔들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일파만파로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위험한 것은 사건의 실체가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치 논리의 가세와 추측성 언론 보도까지 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횡(橫)으로 총리와 3명의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망라하고 있고, 종(縱)으로는 현재 야당의 뿌리인 노무현 정부에까지 이어질 정도로 광범위하고 깊숙이 펼쳐져 있다. 정치권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檢, 파사현정 사명감으로 규명 중요

우려되는 바는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사건의 실체규명이 지루한 진실공방 속에서 오리무중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성 전 회장의 진술과 기록만 해도 그렇다.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경남기업을 살리기 위했다고는 하나 ‘반기문 대망론’에다 북한 김정은까지 언급하고 있어 증언의 진실성을 의심 받도록 만들고 있다. 비망록도 모든 것을 사실로 보기에는 모순되는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안의 성격이 이렇기에 사건의 실체규명이 중요하다.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팀이나 경우에 따라 특임검사, 또는 특별검사제가 채택되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사명감으로 좌고우면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노력이 요청된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한국의 정치지형을 바꿀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일 수 있기에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도 크다.
문제는 국정이다. ‘성완종 리스트’에 관한 검찰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하고 의혹 대상 정치인은 수사에 협조,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국리민복을 위한 국회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기 불황에 따른 국민일반의 삶은 피폐해지고,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의 미래가 분수령에 처해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개혁, 각종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 고용노동시장 개혁 등 정치·경제·노동계 현안 등도 산적해 있다. 사안마다 여·야 정치권, 시민사회세력 간 맞부딪칠 수 있는 민감한 의제들이기에 충분한 조율은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정치권은 정쟁(政爭)을 지양하고 민생·경제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는 실천의지를 가시적으로 보일 때다. 세계적으로 경제 위기가 시시각각 엄습해 오는데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결 이후 연말쯤 예상되는 금리인상 등 한국경제에 불안요소마저 적지 않은 실정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정치권만 민생은 안중에 없이 정쟁에 파묻혀 대책 마련에 실기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어찌 되겠는가.

正道·투명한 정치문화의 기틀 다지는 기회

차제에 깨끗하고 올바른 정치문화의 기틀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홍콩의 정치경제자문위험공사(PERC)는 최근 한국의 부패가 아시아로 확산될 수 있다며 부패 한류를 우려하고 경계 대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이뿐인가. 독일의 베를린 소재 반부패 민간국제기구 트랜스퍼런시 인터내셔널(TI)은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청렴수준이 제자리걸음에 멈춰 있다고 분석했으니 참담할 뿐이다.
도덕지수를 높이기 위해선 지도층이 앞장서야 한다. 대표적 제왕학인 ‘정관정요(貞觀政要)’는 “흐르는 물의 맑고 흐림은 윗물에 달려 있다(流水淸濁在基源).”고 했다. 이번 사안처럼 지도층의 도덕성이 심대하게 훼손될 수 있는 의혹이 현실화된다면 현 정부에서 민생을 위한 개혁 추진 동력은 물 건너간다고 하겠다. 물론 인사권자의 사람 보는 눈과 관리감독도 요청된다. 일찍이 ‘한비자’는 “가까운 이들을 잘 살펴서 간사한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審近防姦).”고 충고했다.
떳떳하지 못한 금품을 받은 이들은 이제라도 변명하지 말고 양심고백을 하길 바란다. 정도(正道)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보낸 우리 공동체가 투명사회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위정자들은 깨끗한 사회, 바른 정치를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물질적 풍요 못지않게 도덕성이 높아야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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