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반성과 참회는 희망을 배태(胚胎)한다. 눈물 속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 비전의 씨앗이 커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금동서의 여러 참회록과 삶을 반추한 수상록은 열독률이 뜨겁고, 영상으로 만나는 드라마와 영화는 시청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직후 서애 류성룡이 쓴 책 ‘징비록(懲毖錄)’은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마디로 후대에 경책을 주려 했다고 보면 되겠다. 요즘 드라마 ‘징비록’도 이런 문제의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불과 이십여 일만에 조선 도성 한양을 삼켰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은 도망치기 바빴고 조정은 그 와중에도 당파싸움으로 시끄러웠다. 허영심 가득한 채 군림만 하다 도망부터 친 양반과 그 밑에서 평생 수탈만 당하며 살아야 했던 민초들은 죽어나갔다. 귀무덤, 코무덤으로 상징되는 그 참담함이란 필설로 다 형언할 수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의병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는 지금 자긍심의 국사를 배우고 있다고 하겠다.

지도층의 기득권 집착이 부른 역사의 과오

국가란 무엇인가. 외침을 막아 영토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국가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국가 경영을 잘못해 백성을 고통 받게 하는 지도자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예컨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일어날 수 없었던 병란이었다. 어리석은 군왕의 통치가 얼마나 국가를 망치고 백성을 고통 받게 하는지 두 재난으로 알 수 있었다. 임진왜란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군웅할거의 내부 악재를 제거하려는 수단으로 삼았다. 내부 갈등을 밖으로 표출시켜 무장들을 소모하려는 광분이었음에도 기득권에 눈이 먼 조선의 지도층은 이를 대처하지 못하고 국토와 백성이 도륙당하는 비극을 맞았다.

병자호란 역시 새로운 강자로 부강한 후금의 위력을 모르고 무너지는 명나라에 기대어 후금을 멸시한 식견 좁은 친명 세력들이 불러들인 병란이었다. 백성이 아우성을 치는데 국가는 백성의 외침을 외면하고 국토를 방어할 군비조차 갖추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의 과오는 다시 되풀이 돼선 안 된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하다. 예컨대 고위 정치인의 불법·탈법·편법은 동시대를 사는 많은 서민들을 탄식케 한다. 온갖 명목으로 서민들의 실질적 세금부담률이 상승하는 사이에 재벌의 세금부담률은 그렇게 오르지 않았다는 소식은 국민을 얼마나 허탈하게 하는가. 고위 공직자 청문회만 하면 단골로 터지는 위장전입과 주택 다운계약서, 병역 의혹 등도 서민의 분노를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어려운 이와 같은 일들은 도덕 불감증에서 나온 것이다.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남들이 알지 못하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위치와 권력을 이용해 불법을 정당화하려는 행태는 그 얼마나 비일비재 한가.

민초 우선 배려로 日 우경화 등에 대처해야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그 근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정치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면 마땅히 상대적 박탈감을 최소화하는 등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맹자는 “백성은 가난을 근심하는 게 아니라, 고르지 아니함을 근심한다(民不患貧 患不均)”고 했다. 못사는 백성이 어찌 가난을 근심하지 않을까마는, 가난보다 오히려 균등하지 않은 게 국민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는 뜻일 터이다.

그렇다. 국가경제가 부단히 발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물론 성장의 과실은 국민, 그중에서도 서민들에게 먼저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적 힘의 결집이 가능하다. 내우외환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도 나온다. ‘징비록’이 앞으로도 매서운 죽비로 과거를 일깨우고 현실을 경계하는 명작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파쟁이 나라를 말아먹고 어리석은 임금과 고급관리들이 국난에 대처하지 못한 자기반성의 양심선언을 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천만 다행인가.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지고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지금 류성룡의 징비록이 던지는 교훈을 통해 다시는 역사 과오의 전철을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자신과 당파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 나라의 지도층이 되새겨야겠다. 내일은 류성룡이 천거, 국난극복의 화신이 된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서애와 충무공의 '불꽃 충혼'이 그립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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