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상 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동향연구부장 )

지난 11월에 필자는 열흘간에 걸쳐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 유럽 3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이번 해외출장의 목적은 유럽과 일본의 공공공사 입낙찰제도, 보증제도, 실적공사비 제도 등 건설제도 전반에 걸친 실제 운영실태를 파악하는데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현안으로 되어 있는 최저가 낙찰제가 유럽이나 일본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조사하는데 주력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입찰가격에 의해서만 낙찰자를 결정하는 발주기관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 건설교통부와 지자체 및 영국 도로공사를 방문해 보니, 금년 3월말에 제정된 유럽연합의 새 지침(New EU Directives)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쟁적 대화(Competitive Dialogue)” 방식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 방식에서는 5개 내외의 입찰자 가운데 1개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그 업체와 대화(Dialogue)를 통해 사업계획부터 최종적인 실시설계까지 완성시킨 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입찰자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전적으로 기술능력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최종적인 설계가 완성되면 그에 따라 결정된 금액을 계약금액으로 정하고 있었으며, 발주자는 사전에 책정된 예산금액 범위내에서 계약금액을 확정하기만 하면 된다.

경영상태 평가는 웹에 구축되어 있는 일정 기준을 통과해야만 입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 방식에서는 계약상대자가 설계과정부터 직접 관여하여 발주자와 함께 가장 효율적인 공사수행방법을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특징인데, 생애주기비용(Life Cycle Costs)도 충분히 고려하여 시공비만이 아니라 유지관리비까지 포함한 총사업비의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우선협상대상에서 탈락한 업체들이 서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면 그 이유도 설명해 주며, 특정업체가 계속해서 공사를 수주하더라도 그 업체가 발주기관의 니즈(needs)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도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설업계 전체의 기술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최저가 낙찰제가 이미 폐기되었고, 지자체만 하더라도 2000년 4월부터 전면적으로 “최고 가치(Best Value)” 방식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배경은 보수당에서 노동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것과 연관된다. 보수당의 경우 오랫동안 강제경쟁입찰(Compulsory Competitive Tendering: CCT)을 통해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해 왔는데,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최저가 낙찰제가 시대착오적인 예산절감 방식이고, 성과(Performance)를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전면적인 최고 가치(Best Value)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Best Value 방식에서는 종종 품질이나 기술력을 더 중시하다 보니 예산금액보다 높은 금액에서 낙찰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 도로공사에서는 지금 시행하고 있는 “경쟁적 대화” 방식을 EU 개방대상공사에 적용하고, 개방대상 공사가 아닌 소규모 공사에 대해서는 Best Value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다.

“경쟁적 대화” 방식에서는 발주자가 정한 예산범위내에서 계약상대자와 협상을 통하여 계약금액을 결정하고 있다. 이 방식에서는 설계조건 등에 대한 기술 협상이 사실상 가격 협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 도로공사에서는 내년 초에 처음으로 이 방식으로 수행한 공사가 준공되는데, 그 성과를 크게 홍보하면서 영국의 다른 발주기관에도 널리 전파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튼 EU 가맹국의 경우, 새로 제정된 유럽연합의 새 지침(New EU Directives)에 따라 2005년말까지 자국 조달법령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2006년 1월부터 “경쟁적 대화(Competitive Dialogue)” 방식은 유럽 각국의 보편적인 입낙찰제도가 될 것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경우 건설시장 개방 대상공사에 대해서는 최저가 낙찰제가 적용되는 일반경쟁입찰을 적용하고 있다. 이때 덤핑을 방지하기 위해 저입찰가격조사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예정가격의 일정비율(66~85%)에 미달하는 입찰자의 입찰내역서를 검토하여 낙찰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일본 지자체의 경우는 아예 예정가격 대비 일정비율 이하의 입찰자를 낙찰대상에서 배제하는 최저제한가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가격의 50%나 60%선에서 낙찰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일본의 지방중소건설업자 연합회인 전국건설업협회에서는 입찰가격만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제도가 불량부적적격업체의 양산원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기술력을 포함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종합평가낙찰방식의 활용을 강력하게 요구해왔고, 실제로 2002년부터 이 방식으로 낙찰자를 선정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일본 국토교통성에서는 유럽의 “경쟁적 대화(Competitive Dialogue)” 방식과 거의 유사한 협상에 의한 낙찰 및 계약방식을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유럽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하다고 하는 일본만 하더라도 입찰가격에 의한 낙찰방식을 탈피하고, 기술력에 대한 평가와 “협상”에 의한 계약을 핵심으로 하는 입낙찰방식이 정착되었거나,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같은 전세계적인 조류와 거꾸로 최저가 낙찰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이 “최저가 낙찰제→최고 가치(Best Value) 낙찰제→경쟁적 대화(Competitive Dialogue)에 의한 낙찰제“와 같은 순서를 밟아 갔으니, 우리도 최저가 낙찰제부터 시작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개방된 세계건설시장에서 영국, 프랑스, 일본의 건설업체와 경쟁하면서, 국내에서 그와 같은 순서를 순차적으로 밟아 나가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고, 뒤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이건 일본이건 입낙찰제도 변화의 핵심은 최저가 낙찰제를 통한 시공비용의 절감이 아니다. 투자 가치(Value For Money)의 극대화를 위한 기술력 평가를 제대로 하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세계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안된다고 체념하면서 “최저가 낙찰제” 아니면 “운찰제(運札制)”를 오락가락해서야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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