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의 처신은 중요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존망(存亡)을 좌우한다. 동서고금의 교훈이 가르치고 있다.
정치인을 비롯한 지도층이 존경받고, 그들의 말에 힘이 실리는 길은 무엇일까. 솔선수범이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라고 하면 따르는 이가 없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실권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바른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직설적으로 대답한다. “정치는 올바름입니다. 지도자인 당신이 앞장서서 바르게 하면 그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마땅한 말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행위를 본보기로 만들어야 신뢰를 얻어 관리하고 통치할 수 있다.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서 남을 바르게 하는 법이란 없다. 공자는 계강자에게 한마디 덧붙이기를 “군자의 덕은 바람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고 했다. 바람이 풀에 분다면, 풀은 반드시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눕게 될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정치인이 모범을 보이면 백성이 모두 그에 따를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국가위기상황에서 벌이는 집권층의 내홍

한데 요즘 우리 사회에 과연 진정한 지도자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회의감이 밀물처럼 가득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확산으로 국민 불안이 큰 상황이다. 국가적 대응 체제 정비에 힘을 모아도 메르스 불안의 조기 해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마당에 집권층은 ‘집안싸움’을 벌이고, 야당은 ‘딴죽걸기’에 날을 새고 있다. 볼썽사납다. 누구보다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집권층의 내홍(內訌)은 호된 비판을 받아도 싸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당, 여당 내 ‘친박’ㆍ‘비박’ 갈등이 연일 이어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가 합심해서 김무성·유승민 대표체제와 대결하는 형국이다. 물론 명분은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권 내 패권다툼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지금이 이럴 때인가. 국내 경제가 처한 위급성이나 한반도 안보 환경 등 ‘대한민국호’가 헤쳐가야 할 풍파가 만만치 않다. 메르스로 인해 중국 관광객인 유커(遊客)의 예약 취소가 잇따르는 등 내수경기 회복이 흐트러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출부진에 이어 내수경기까지 한국 경제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해외 상황도 만만하지 않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RB)의장이 최근 "연내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발언한 점을 고려하면 금리가 높아지는 미국으로 외화가 이동하는 경우도 상정된다. 그러잖아도 일본의 양적완화로 인해 힘을 받은 엔저 상황에 우리 수출기업들을 질식 직전이다.
이런 현실에서 여권 내부의 복잡하게 얽힌 갈등이 가닥을 잡지 못한 채 마구 표출되는 사태는 그 자체로 크게 걱정스럽다. 국가적 위기에도 집권세력이 주도권 다툼식 집안싸움에만 골몰해서야 어디 집권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국정의 콘트롤 타워인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전국이 비상사태에 놓였는데도 청와대 거부로 당·정·청 협의마저 중단됐다니 한심한 일이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정쟁을 유발하는 주장만 일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지도자들이 모범 보여야만 국난 해결 가능

싸우다가도 국가 중대사태가 터지면 중단하고 해결하는 건 상식이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초·재선 쇄신 의원 모임인 '아침소리'는 "국민들은 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는데 우리 정치권은 집안싸움, 헤게모니 다툼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의 불안과 정치 위기 상황은 당의 단합과 원활한 당·청회의를 통해 슬기롭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섰겠는가.
그렇다. 국가 역량을 다 모아도 부족할 시점에 당·청 간 갈등 모습은 국민 불안을 더 가속화시키는 무책임 정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은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각 부문의 구조 개혁 과제가 산적한 집권 3년차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오랜 불황으로 소상공인과 서민, 청년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국가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권, 특히 집권층이 난국을 풀어 희망을 주는 합리적인 틀을 만드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직함이 크든 작든 지도층이 “바람 풍!”이라고 말하는,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한다. 국난해결의 힘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초로 상징되는 풀은 지도층 같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눕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한다고 했지 않은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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