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도층 공직자가 갖춰야 야 할 덕목은 적지 않다. 덕목 중 하나가 바로 그 직위에 맞는 인격과 능력이다. 공직자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위에 따른 능력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지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위치와 관련해 분수에 넘어서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특히 아무리 권력, 금품, 명예를 놓고 유혹을 해도 도덕성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결단코 거절하고, 발을 담그지 않아야 생명이 길다. 맑고 향기 나는 공적 삶이다. 만약 자의든 타의든 공직윤리에 저촉되는 비리에 연루됐으면 물러나는데 주저해선 안 된다. 그게 공직자의 옳은 처신이다. '진퇴유절(進退有節), 나아가고 물러남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우리 선비들의 가르침이다.

사리가 이러한데도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은 양심마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현대판 음서제(蔭敍制)’ 논란을 부른 국회의원들의 자녀 취업 청탁 의혹에 대한 여·야 대응이 미적지근하다. 새정치민주연합 윤리심판원이 8월31일 윤후덕 의원 징계심의를 각하한 것이 좋은 예다. 윤 의원은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딸이 지역구인 경기 파주의 LG디스플레이에 변호사로 취업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건 것으로 드러나 취업 청탁 의혹을 불렀다. 이에 문재인 대표는 8월17일 당 윤리심판원에 직권조사를 요청했지만 징계시효가 소멸해 징계심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정이 났다. 윤 의원이 전화를 한 것은 2013년 8월11~15일로 추정되는데 최소 2일 차이로 2년의 징계시효가 끝났다는 것이다.

전 새정치민주연합 박기춘 의원(무소속)의 사례는 또 어떠한가. 박 의원은 모두 3억58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가족들이 챙긴 것까지 합치면 7억3000여만원에 달한다. 아들 결혼 축의금으로 1억원을 받고 가족들도 고급 시계를 받았다니 현역 정치인의 도덕 불감증이 이 정도인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박의원은 지난달 19일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돼 영어의 몸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박 의원의 범죄 연루 혐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의 쓰레기 소각 잔재 매립장인 '에코랜드' 내에 지어진 무허가 야구장 공사과정에도 개입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안들이 이쯤되면 박 의원은 의원직 자체를 사퇴하는 게 도리다. 그런데 박 의원은 구속된 지 보름이 됐는데도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박 의원은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모든 상임위가 국감 준비에 한창인데 국토위만은 위원장이 공석이라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물론 새누리당의 자세도 비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특혜 채용 논란을 부른 김태원 의원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를 다짐한 지 감감무소식인 행태는 이해할 수 없다.
성폭행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전 새누리당 소속 심학봉 의원(무소속)의 거취도 마찬가지다. 국회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심 의원이 국회의 명예를 심각하게 실추시켰다며 의원직 제명이 합당하다고 지난달 28일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정당을 떠나 여·야가 ‘친정’ 식구들을 음으로 양으로 감싸고도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의 자세가 아니다. 하긴 박기춘·심학봉 의원처럼 일반인도 저질러선 안 될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면, 자신들이 스스로 의원직을 놓는 게 우선이다.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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