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풍경(Blurry Scene) 임태규 초대전 2015. 9.11-19 금보성 아트센터

▲ 흐린풍경2015-맹동(孟冬), 130x194cm, 장지에 수묵담채, 백토, 2015

[일간투데이]

오지 않을 것 같던 가을이 이내 찾아오고 더욱 추워질 겨울을 기다린다.
언제나 세월은 때가되면 알아서 흘러간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 빨리 흘러간다.
흐르는 시간이 길수록 지난 기억 또한 희미해져간다. 하지만 남기고픈 기억은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홍대 앞에서 우연히 만난 임태규선생님, 눈이 마주친 순간 20년이 훨씬 지난 나를 반갑게 알아봐 주시고 기억해 주셨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지만 선생님 또한 변함없이 멋진 모습이셨다. 같은 미술계에 있어 전시도록에서 성함을 볼 때마다 그때 그 선생님일까 하는 생각을 해왔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도 그랬던 것 같다. 잘 살고 있겠지...라고 말이다.

세월이 흘러 희미해지는 기억의 끝을 잡고 짧은 대화와 함께 아쉬운 이별을 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현실의 시간 속으로 간다.

▲ 흐린풍경2015-맹동(孟冬), 90x180cm, 장지에 수묵담채, 백토, 2015

<흐린 풍경(Blurry Scene)>을 주제로 한 임태규 작가의 초대전을 들여다보았다. 임태규 작가는 홍대에서 동양화 학사 석사를 마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철학 박사를 받은 그야말로 지와 덕을 겸비한 분이다. 오랜 세월 한 곳으로 매진해온 그는 전통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는 수묵풍경의 지존이다.

작품「흐린 풍경2015-맹동(孟冬)」, 「흐린 풍경-도원경(桃源境)」은 산수의 풍경을 담묵(淡墨)으로 담백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으로 신비함까지 느껴진다. 작가가 말하는 ‘흐린’은 날씨와 기후의 변화에 쓰이고, 시간의 기억과 상황에 따른 감정의 변화에 쓰이는 형용사적 의미이다. ‘흐린 풍경’은 여러 곳을 다니며 보았던 구체적 자연의 흐릿한 기억과 흐릿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들이 투영된 현실의 모습이라고 했다.

▲ 흐린풍경-도원경(桃源境), 120x120cm, 장지에 수묵담채, 백토, 2015

「흐린 풍경2015-맹동」시리즈를 보면 겨울 날 맹동의 한기에 맞서는 강인한 소나무가 외롭게 홀로 서있고,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은 푸릇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 녘의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맞으며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인물이 있는 풍경이다. 「흐린 풍경-도원경」에서는 따사로운 햇살이 전체를 물들이는 듯한 신비한 풍경으로 선명한 나룻배를 통해 이상향의 나라로 떠나려는 준비를 한다. 흐린 풍경 속에 또렷하게 자리한 나무, 나룻배, 사람 등 농묵(濃墨)의 표현은 작가 본인이기도 하고, 작품을 보는 관람자이기도 한 현실의 상징물이다. 흐린 풍경의 고요함과 진한 사물의 생생함이 잘 어울려 서로 다르지만 완전한 하나를 이루는 진정한 조화를 보여 주고 있다.

다사다난한 인간의 삶 속에서 여유와 휴식의 세계를 꿈꾸는 염원을 담고 있는 임태규의 작품들은 다시 한 번 숙연하게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힐링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애리(미술학박사/협성대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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