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조류 역행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당 태종이 신료들과 정치에 대해 주고받은 내용을 오긍이 편찬한 책으로서 제왕학의 교과서로 여겨지는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옛일을 오늘의 거울을 삼으면 흥하고 쇠퇴함을 알 수 있다.(以古爲鑑 可知興替)”고 강조한 게 잘 말해주고 있다.
‘역사’는 그만큼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역사를 국정 교과서로 가르치겠다는 정부·여당의 방침으로 논쟁이 뜨겁다. 교육부가 이번 주 초 국정화를 공식 발표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 편찬을 위탁할 계획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부는 한국사를 국정 교과서로 한 권만 발행하면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수능시험의 오류 가능성이 없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우리가 무슨 통계를 낼 때 마다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세계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북한, 러시아, 베트남과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몇몇 이슬람 국가 정도뿐이다. 중국 역시 공산당 1당 체제인데도 80년대 후반부터 검정제로 바뀌었다.
그럼 정부·여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전국 주요대학 역사 관련 교수와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등은 “독립운동 정신을 훼손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를 반대한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애둘러 표현했지만,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좌편향·친일독재 미화 시도’ 모두 개선 대상
물론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적 서술 사례는 개선해야 한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의 이념 편향적 서술 및 분석 사례를 살펴보면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비롯해 남북 분단의 책임 여부 등 근·현대사 부분에서 이념 편향적인 요소가 적잖게 포함돼 있는 게 드러났다. 이처럼 국사교과서의 개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국정화 전환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여당은 극약처방 외길로만 갈 게 아니라 현행 검정체제의 한계와 보완 가능성부터 면밀히 검토하는 게 순서다. 야당의 현상 유지론 또한 불안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야당 스스로 정확한 진단을 토대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학생들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의식을 지닐 수 있다.
논점이 명확해졌다. 좌편향과 오류는 바로잡아야겠지만, ‘친일·독재 미화’ 오해를 사는 국정화는 세계조류에 맞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현명한 군주는 허물을 듣는 데 힘쓰고, 칭찬하는 소리는 바라지도 않는다.(明王務聞其過 不欲聞其善)” ‘사기’의 권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외 경제위기를 거론하면서 노동 등 4대 분야 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한다면 국정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라는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국정을 또 다른 정쟁의 소용돌이로 내모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외환(外患)이 깊어지는 때에, 세계조류에 역행함으로써 내우(內憂)를 키우는 국론분열은 안 된다. /주필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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