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품격이다. 한 개인의 인격이 배어 있고, 집단의 문화를 상징한다. 말의 생명력이자 상징성이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막말과 이념 투쟁성 언사가 걸러지지 않은 채 쏟아지고 있다. 아이들의 역사교과서를 놓고 정치가 이처럼 오염될 될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물론 경제 살리기와 노동개혁 등 민생문제가 시급할 뿐더러 외교적 변수도 중대한 이 시점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진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더욱이 이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과정을 보면 거의 막장 수준이다. 우선 흑백논리에 입각해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는 구태정치의 악폐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야 지도부는 양분된 여론을 부추기며 칼끝을 더 예리하게 상대방을 겨누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여·야 정치권의 ‘뚫린 입들’은 연일 막말과 몰상식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주요 언론들은 이런 저급한 언동을 하루 종일 보도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놓고 벌어지는 ‘몰상식한 정치’

예컨대 여당의 모 최고위원이 퍼부은 막말은 금도(襟度)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그는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세력을 향해 “언젠가는 적화통일이 될 것이고 그들의 세상이 됐을 때 남한 내에서 우리 어린이들에게 미리 그런 교육을 시키겠다는 의도”라고 말의 융단폭탄을 쏟아 부었다. 공자는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스럽게 말하라.(三思一言)”라고 했다. 세 번 아니 한 번만 생각하고 입을 열었어도 이런 ‘저질 색깔론’은 제기할 수 없을 터이다.

정조는 말을 조심하라며 “사람은 언어로 한때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미천한 마부에게라도 일찍이 이놈 저놈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人不可以口業取快於一時 予雖於僕御之賤 未嘗以這漢那漢呼之也)”고 가르쳤다.

야당 대응도 거칠긴 마찬가지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여당 일부 의원을 겨냥, “유우성 같은 ‘창조간첩’을 만들더니 이제는 ‘창조지령’을 만들어 국정 교과서 반대운동에 지령을 덧씌우고 색깔론 공세를 한다”며 “두뇌의 정상화가 시급한 친박실성파”라고 말해 사실상 미친 사람 취급을 했다.

국회의원들의 막말이 처음은 아니지만 최근의 저질 발언들에는 상대방을 향한 증오가 배어 있다. 갈등 조정 기능을 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선동하고 흥분하는 꼴이다. 참으로 질 낮은 언동들이다. 막말을 칭찬하는 일부 맹목적인 지지층 유권자들도 반성해야 한다. ‘잘했어’ ‘시원하게 했어’라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의원들이 저러는 것이다. 증오 섞인 막말은 정치를 혐오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정치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을 낮추고 신뢰 자본을 갉아먹는다.

■‘혀 아래 도끼’로 모두 죽을 수 있어 조심해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막말이나 증오 발언에 대해 적극 제재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개적 사과, 한시적 의정활동 금지 등 본인이 창피할 정도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 정당이 막말 내용을 의원 이름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공천에 불이익을 줘야 한다.

특히 집단지성(集團知性)의 실종은 가슴 아프다. 새 역사 교과서 집필 의사를 밝혔거나 국정화를 반대한다고 서명한 학자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선후배·동료로부터 “그만두라”는 압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온라인상에선 ‘매국노’로 지목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표 집필자로 초빙한 명예교수에게는 ‘이 바닥에서 이러면 안 된다’ ‘죽고 싶으냐’며 회유하려 했다고 한다. 국정화 반대 의사를 밝힌 유명인에겐 한 누리꾼이 ‘반국가 선동의 선봉에 섰던 종북 가수 ○○○이 비참하게 불귀의 객이 됐다. 다음은 빨갱이 가수 차례’라고 쓴 글을 캡처해 올렸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너무 심하다. 국민의 수준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서야 있을 없는 행태들이다. 정치 품격을 추락시키고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한 없이 증폭시킨 대가를 어떻게 치르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자유의사가 억압돼서는 안 된다. ‘남에 대한 험담은 식은 죽 먹기(言他事食冷粥)’처럼 쉬울 수 있겠지만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는 격언의 우려대로 자신이 한 말로 인해 이웃과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사회, 우리 정치의 수준을 높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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