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소통(疏通)의 문제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불통(不通), 곧 소통의 문제가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은 그렇다 치고 여당 내 친박 대 비박, 야당 내 친노 대 비노, 그리고 노사관계에 이르기까지 쟁투(爭鬪)의 파열음이 거칠다.
마음이 안 통해 갈등이 커지고 막힘이 생긴다는 의미다. 대화가 안 되어 마음이 답답하고, 또 마음이 안 통하다 보니 정치수요자인 국민의 요구를 잘 모른다. 국민들의 가려운 곳이 어딘지 모르는 불신정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불통은 개인에겐 화병, 가정에선 이혼, 사회적으로는 집회·시위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동의보감’에 “통하면 안 아프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通卽不痛 不通卽痛)란 말이 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 공감과 포용으로 소통에 나섬으로써 불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소모와 사회적 고통을 줄여야겠다.

평화의 상징 꽃…충돌 없는 ‘민중 집회’

그러려면 상대를 감싸 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배려의 유무에 따른 결과는 천양지차다. 이른바 최근 두 차례 있었던 ‘민중총궐기 집회 및 시위’를 보자. 주말인 5일 서울 도심에서 정부의 노동개혁과 교과서 국정화 등에 반대하는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우려했던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간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서울광장 집회를 마친 뒤 지난달 14일 1차 '민중총궐기' 때 다쳐 중태인 백남기(69)씨가 입원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까지 행진에 나섰다. 주최 측이 ‘평화 집회’를 공언했던 대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장삼과 가사를 걸친 스님도, 예복을 입은 신부도 꽃을 나눠주면서 평화적인 시위를 촉구했다. 사회 각층이 만든 인간띠가 평화적인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날 평화적인 집회·시위가 가능케 한 데 크게 기여한 종교인들의 말을 곱씹어들어봐야 한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렇게 당부했다. “자비심으로 평화의 씨앗을 심는 우리의 호소와 작은 몸짓이 사회갈등을 녹여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차벽을 설치하는 순간 사람들은 고립되고 목소리는 전달할 수 없게 된다. 단절의 자리에서 폭력이, 소통의 자리에서 평화가 피어난다.”고 강조했다.
종교인들은 정부와 참가자들에게 강조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안전한 집회와 행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집회 참가자는 폭력을 자제하고, 경찰은 폭력 진압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 촉구했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다. 정부는 백남기 씨와 가족에게 참회와 용서를 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지난 14일의 1차 집회는 폭력 시위와 강경진압으로 점철됐다. 시위대는 행진을 막는 차벽을 흔들어 부수려했고 이에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을 직사하며 응대했다. 이 과정에서 60대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기도 하고 수십명의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이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설치한 질서유지선은 바닥에 뒹굴었고 짓밟혔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공권력이 땅에 떨어진 그날 밤은 아수라장이었다.

부드러움이 승리, 쟁투 대신 대화를

후유증은 컸다. 새누리당은 이미 위헌 판결이 난 '복면금지법'을 발의하기에 이르렀고, 박근혜 대통령은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시위참가자를 야만적 이슬람국가(IS) 대원 수준으로 오도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아연실색하게 했다. 집회 주최측과 야당은 크게 반발했고, 정치사회적 갈등만 깊어졌다. 이런 일련의 현상 속에서 지난 주말의 평화적 집회 및 시위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게 하고 있다.
권력이든 시민사회단체든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세력은 용납되는 시대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엔 적법한 절차가 존재한다. 절차는 질서다. 질서가 있기에 민주주의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이를 위한 대화가 전제돼야 한다. 대화가 실종된 힘에 의한 폭력은 공멸을 부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법이다. ‘노자’는 설파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태어날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을 때는 굳고 단단해진다.(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그렇다. 생명은 부드러움이요, 죽음은 뻣뻣함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이치다. 서로 쇳소리 나는 쟁투를 멈추자. 국리민복을 위해 함께 길을 가는 ‘도반(道伴)’이지 않는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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