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인명경시 풍조에 섬뜩함을 느낀다. 인두겁을 쓰고서는 차마 못할 짓을 벌이는 일들이 꼬리를 잇는다. 툭하면 사람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사체 훼손 등을 일삼고 있다. 얼굴만 사람일 뿐 짐승의 마음이다. 근래 친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엽기적으로 살해한 아버지와 엄마가 지탄을 받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맺는 인간관계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가깝고도 귀한 관계이다. 더구나 하늘이 맺어준 천륜이기에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바꿀 수도 없는 절대적 관계이다. 원한다고 부모나 자식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그래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했다. 가정윤리의 실천덕목인 오륜(五倫)의 하나로서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존경과 섬김을 다하라는 뜻이다. 한데 서로 죽고 죽이다니! 문제는 비슷한 사례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줄 잇는 엽기적 살인사건에 ‘섬뜩’

소우주(小宇宙)-. 우주만물을 한 몸에 담을 정도로 사람 개개인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인간은 참으로 귀한 인연으로 태어난다. 이런 인연에 대해 고려 때 대선사 보조 스님은 ‘맹구우목(盲龜遇木)’과 ‘섬개투침(纖芥投針)’에 비유했다. 맹구우목은 ‘열반경’에 나오는 말로서, 바다 속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물 위로 떠오를 때 마침 바다 위를 떠다니는 널빤지에 뚫린 작은 구멍에 거북이 머리가 들어가게 되는 아주 드문 인연을 말한다. 섬개투침은 바늘을 땅위에 세워놓고 하늘에서 겨자씨를 던져서 그 겨자씨가 바늘에 꽂히는 참으로 희박한 확률을 뜻한다.

이 모두 인간들이 쉽게 행할 수 없는 것처럼,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이처럼 어렵다는 것이다. 한 번 태어난 생명을 소중히 하고 값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자도 인명의 귀중함에 대해 설파했다. 그가 관리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조정에서 집에 돌아오자 하인이 마구간에 불이 났다고 아뢰었다. 당시 그는 매우 뛰어난 명마 한 마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대신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가?(傷人乎 不問馬)”라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논어’에 나온다. 비싸고 귀한 말보다는 사람을 더 걱정했던 것이다. 그가 왜 성인으로 추앙받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 중 하나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에 엽기적 살인사건 등 인명경시 풍조가 횡행하고 있다.

엽기적인 범죄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떨쳐버릴 수 없는 의문은 도대체 그 끝 모를 미움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됐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범죄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좌절과 그로 인한 편견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처방은 두 가지이다. 생존경쟁에서 ‘좌절과 소외’를 막기 위한 사회통합의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또한 생명 경시를 부추기는 각종 유해한 대중문화 근절도 병행돼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소우주’같은 가치

물론 범죄는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돌아볼 게 있다. 무거운 형벌로만 문제를 풀 수 있었다면 문제는 애초 생기지도 않았다.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바로 일깨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출산 고령화, 핵가족화, 이혼율 증가, 학교 폭력, 자살 증가 등 사회 병리 현상이 장기간의 경제난과 맞물리면서 가족 관계가 단절되고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가족은 우리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 가족의 사랑과 윤리가 무너지면 어떤 종류의 사회윤리체계도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인성교육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자라나는 청소년이 ‘건강한 가정이 행복을 지키는 보루’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가정이 바로 서면 학교와 지역공동체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반면 울분과 혈기만 분출하는 ‘울혈(鬱血)사회’가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다. 서로 배려하는 공동체를 구현, 생명 가치를 드높여야겠다.

우리 사회의 인명경시 풍조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가 잉태하고 있던, 예고된 비극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비상 경보음을 울렸다고 봐야 한다. 이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직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가진 사람이나 가진 게 없는 사람이나 목숨은 하나밖에 없다.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누가 대신할 수도 없다. ‘건강한 가정’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 생명존귀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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