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대한민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곧 지도층의 사회적 책무는 실종된 것일까.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재벌가 ‘갑질’에 여론이 들끓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의 상습 폭언과 백미러 접고 운전 강요,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의 갑질 매뉴얼과 폭행 등 재벌가 2·3세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국민들 기억 범위 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토종 피자 미스터피자 신화’의 주인공 정우현 엠피케이(MPK)그룹 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식당에서 경비원 뺨을 때리고 폭언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의 수행기사 폭행사건이 잊혀 질만 할 무렵인데 ‘회장님 갑질’ 논란이 또 도졌다.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윤리도덕성 결여 '졸부' 2,3세의 갑질

갑질을 일삼는 재벌가는 사회적 비난이 빗발치고 감독관청이 조사, 제재에 나서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몸을 낮춘다. 우선 위기를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오너 경영인들의 갑질이 이런 식으로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

뒤처리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이들의 일탈은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후유증을 낳는다. 막대한 부와 특권을 누리는 일부 오너 경영인들의 이런 행태는 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물을 흐려 대다수의 건전한 기업인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다.

누구보다 재벌 2, 3세들의 인성에 기반한 윤리도덕성 확립이 요청된다. 이미 우리 사회 권력이 정부로부터 시장, 기업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 또한 갑질로 국민의 공분을 사지만 대중과 매체에 의해 상시적 감시를 받는다.

반면 재벌 2·3세들은 연예인보다도 감시를 덜 받지만 이들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은 국회의원 한두 명에 비할 바가 아닌 게 현실이다.

재벌가에서 자손들에게 이익 추구 위주의 경영수업만 시킬 것이 아니라, 덕성과 시민성을 길러줘야 한다.재벌 1세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2세, 3세로 내려오면서 점점 심해진다.

결국 재벌가 교육이라는 게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고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된 탓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이런 교육만 받았기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각보다는 약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행태가 몸에 배 갑질로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갑질은 장기적으로 갑에게도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부도덕한 리더를 가진 회사는 외부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어 미래가 어두워진다.

즉,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의 격을 스스로 격하시키는 행위이다. 칸트는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순수이성을 가지고 있어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세울 수 있고, 순수이성을 실현함으로써 존엄성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갑질을 일삼는 경우 상대방을 목적이 아닌 수단화할 뿐 아니라, 자신마저 자연법칙에 구속되는 일개 수단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존엄성을 잃게 된다.

제 배 부르면 남의 배고픔 모르는 것인가

갑질은 힘의 논리를 앞세운 일종의 폭력이다. 재물을 얻더라도 도덕적 가치관을 바탕에 둬야 한다. '대학’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군자는 먼저 덕을 쌓아야 한다(君子 先愼乎德). 덕이 있으면 사람이 있게 되고(有德此有人), 사람이 있으면 땅이 있게 되고(有人此有土), 땅이 있으면 재물이 있게 되나니(有土 此有財) …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德者本也 財者末也).”

갑질은 개인적 결함으로 인한 경우와 기업의 극단적 이윤추구로 인한 경우로 나뉜다. 항공기 회항이나 간장회사 회장의 폭행은 왜곡된 인성이나 시민의식 부재 같은 개인적 결함에 기인한 반면, 방문판매원을 빼가거나 불공정거래행위는 기업의 탐욕적 이윤추구 때문이다.

갑질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갑질은 몸은 자유시장경제 사회에 살면서 머리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하고 있어서 발생하며, 건전한 사회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므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동안 경험했던 울분들과 이제껏 알려진 슈퍼갑들의 행동들에 대한 고발과 분노가 넘쳐난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폭력들이 도처에 있음을 느낀다.

나의 이익 도모를 위해 이웃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 ‘제 배 부르면 남의 배고픈 줄 모른다’는 속담이 헛되기를 바란다.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재벌 2·3세들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려면 '졸부'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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