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엄정한 원칙 아래 국민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 방향에서 진행돼야 한다. 채권단 자율협약을 받았던 STX조선해양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행이 사실상 정해지면서 조선업에 대한 은행권의 충당금 폭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게 이 같은 필요성을 절감케 하고 있다.

조선업에 대한 은행권 익스포저(위험노출액·대출+신용보증)가 70조원이 넘어 현재 ‘정상’인 건전성 분류가 ‘요주의’로 강등되면 은행권은 4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충당금 폭탄’을 맞게 된다. 당장 STX조선이 법정관리로 은행권은 2조원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STX조선의 은행권 익스포저는 5조8000억원인데 대부분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등 3개 은행에 몰려 있어 이들 은행의 손실규모도 크다.

채권단은 STX조선에 대해 ‘고정’ 또는 ‘회수의문’으로 분류해 익스포저 절반 정도를 충당금으로 쌓아놓았지만 법정관리행으로 추가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특히 1조2000억원의 RG(선수금환급보증) 부담이 크다.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선주들이 선수금환급을 요구해 은행들이 선수금을 대신 갚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대우조선 등 조선 ‘빅3’마저 부실화되면 은행권의 충당금 부담은 급격히 불어나는 건 불 보듯 훤하다. 은행권의 조선업 익스포저는 71조2000억원 이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22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현대중공업이 17조5000억원, 삼성중공업이 14조4000억원이다.

은행부실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위한 ‘발권력’ 동원 및 지원, 국민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구조조정이 도무지 진척이 없다는 사실이다. 조선·해운업계만 하더라도 말만 요란한 상황이다.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 마련조차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게 없다. 늑장 구조조정으로 부실을 키운 STX 사태는 산업 재편에 직면한 우리 경제의 반면교사다.

STX조선은 2013년 이후 3년간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통해 공동관리를 해왔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조선업에 아무런 식견이 없는 채권은행 경영진과 금융당국이 부실을 도려내는 정공법보다는 임기 중 손실을 회피하는 미봉책으로 일관한 탓이다. 그 사이 채권단이 쏟아부은 돈만 4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지원을 받고도 적자가 커지고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구조조정을 하되 채권단의 엄격한 실사와 뼈를 깎는 아픔을 노사 모두 감내하는 결단, 그리고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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