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종택 주필

개헌(改憲)이 화두다. 아니 시대명제다. 꺼져가던 개헌론의 물꼬를 튼 것은 입법부 수장인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정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꺼내들었다.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외면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한 것이다. 정 의장은 이후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할 정도로 개헌을 위한 ‘인프라’를 깔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제20대 국회의원 가운데 80% 정도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니, 공감대는 형성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개헌이 난망하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대부분 동의하는데 왜 그럴까.
현행 헌법의 탄생 배경과 현실을 보자. 오늘의 헌법은 1987년 체제의 산물이다. 5공화국 정권이 사망선고를 받은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성원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무엇보다 5년 단임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처럼 대통령은 너무 막강한 권력이다. 헌법에 보장된 총리 권한은 ‘빈껍데기’다.

■고비용 정치·정치 불안정 막는 선진 헌법

또한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다르기에 불규칙하게 대선, 총선이 치러지는 ‘이격 현상’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 임기를 같게 만든 뒤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고 지방선거를 그 사이에 배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해야 잦은 선거로 인한 고비용 정치와 정치적 불안정을 막고 적절한 수준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권력구조는 물론 현행 1인 승자독식형 소선거구, 정당제도 등도 손봐야 한다.

어디 이뿐인가. 87년 이후 한 세대가 흐르면서 기본권 조항 등 손질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평등권 조항을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서 연령, 인종, 장애 등에 따른 차별금지로 확대되는 게 시급하다. 또 다문화, 환경, 수도권 집중 등의 키워드도 개헌 과정에서 다뤄야 한다. 통일시대 대비와 글로벌 대한민국은 물론 양극화 해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 걸 맞는 정비 등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현행 헌법에 의해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남은 1년6개월 동안 개헌을 위한 토론과 준비 시간을 갖고, 다음 정부에서 실행하는 로드맵이 가장 현실적일 것이다. 과거 개헌론은 유력한 대선주자의 암묵적 반대에 번번이 무산됐다. 그럴 힘을 가진 이가 없는 지금이 호기일 수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비대한 권력을 나눠 대결을 지양해야 한다. 지방분권 의지를 명문화하고 중앙집권형 권력구조도 대거 지방에 이양하는 방안 또한 포함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에 협력해 대처하며, 백년지계를 실천할 수 있는 체제로 가야 하는 것이다.

갈등과 차별, 분열, 불공정의 고리를 끊고 국민통합과 평화통일 시대를 맞이하는 개헌에 중지를 모을 때다.
다만 개헌의 최대 변수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다. 임기 중 개헌이 완료되면 박 대통령의 주요 치적이 될 수도 있지만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임기 말 어느 정도 국정운영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결국 여야 정치권이 압박해도 경제난 등을 들어 개헌 추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개헌 논의는 ‘블랙홀’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개헌 논의 난망(難望)의 배경이기도 하다.

■현 정부는 ‘블랙홀’이라며 부정적 입장

하지만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서경’에 “제때 건너지 않으면 배에 실린 물건은 썩고 말 것이다(弗濟 臭闕載)”고 한 바는 시간의 화급함을 잘 말해주고 있다. 어물이든 채소든 신선도가 생명이다. 때가 지나면 제값을 받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거저주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법과 제도 개선도 마찬가지다. 항구적인 정치 안정 속에 민생을 살리는 일 또한 제때 제대로 해야만 빛이 난다.

중국 전국시대 대표적 법가 ‘한비자’는 말했잖은가. “악이 없어지고 선이 생기는 것은 법을 잘 만듦에 따르고, 법을 공정하고 분명하게 실행하면 국가대사가 성공한다(惡滅善生隨立法 分明正確成公業)”
법의 중요성에 대한 명쾌한 논리다. 그렇다. 사회 질서와 국민 삶의 문제가 법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 통치체제의 기초에 관한 각종 근본 법규의 총체인 헌법을 바꾸는 개헌은 이번 20대 국회 전번이 적기라고 하겠다. 개헌을 위해 국민적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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