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35% 채용 법제화…지방기관 전락 가속화
우선채용권역 확대·맞춤형 인재양성 등 보완책 시급

▲ 지난달 17일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서 열린 충북 이전 공공기관과 12개 지역대학의 합동 채용설명회에 취업준비생들이 몰리며 만원을 이루고 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참여정부 시절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인 '국가균형발전'. 수도권에 모여 있던 대부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이 짐을 싸들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수도권 집중화를 완화시키고, 지방 자생능력을 키우기 위해 탄생한 '행복도시'와 '혁신도시'가 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낱 소란스런 이사행렬에 그칠 것인가, 대한민국을 재도약케 하는 '신의 한수'가 될 것인가.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지금 중대 갈림길에 섰다. 이에 본지는 4차례 기획을 통해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이 제시하는 '업무효율과 정주요건, 지역발전'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당면 문제 진단과 해결 방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일간투데이 강태현 기자]

"20년 가까이 거주한 지역 공공기관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최종학력이 서울소재 대학이란 이유로 채용우대 혜택을 받을 수 없었어요. 1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취업난 속에서 지역인재 채용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입니다"

20대 후반 취업준비생 이 모씨는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해당 공공기관 입사를 포기했고, 최근 서울 소재 한 기업에 입사했다.

◇ 고향서 '외면'당하는 우수인재

정부가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추진 중인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에 따라 대상 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 논란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지방세 수입은 늘어나고 있다. 최근 3년간 10개 혁신도시의 지방세 수입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13년 535억원에서 2014년 2128억원, 2015년 7442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방세 확보와 함께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대표적인 효과로 기대되고 있는 지역인재 채용에 있어선 지자체와 해당 지역 공공기관 내부의 목소리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최근 김승수 전북 전주시장은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35% 의무채용 법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지자체에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지역인재 채용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기관은 '적격자가 부족하다'며 이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9조의 2에서는 이전공공기관이 지역인재 채용에 힘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기관이 속한 시·도 소재 대학 출신을 우선 고용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혁신도시 지역인재 채용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각 공공기관은 지역할당제와 채용목표제, 가산점부여제 등을 도입해 해당 지역 대학 졸업자들에게 입사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공공기관 지방이전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최근 2년간 혁신도시 공공기관들의 지역인재 채용 인원은 지난 2014년 873명에서 지난해 1136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채용인원에서 이전지역인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중 10.2%에서 12.8%로 2.6%p 증가했다.

지역인재 채용비중은 부산이 27%로 가장 높았으며, 경남(18.8%)과 대구(16.5%), 광주전남혁신도시(15.5%)가 뒤를 이었다. 반면, 세종(6.2%)과 강원(9.2%), 울산(9.8%)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을 나타냈다.
 

▲ 지난해 기준 이전지역인재 채용비율 5% 미만 기관 현황. 자료=국회예산정책처

◇ 인사처 "뽑을 인재가 없다"

이전지역인재 채용비율이 5% 미만인 기관은 채용이 저조한 사유로 '적격자 부족'을 1순위로 꼽았다. 해당지역 대학 졸업자 지원 및 관련 분야 적격자가 부족하단 지적이다.

실제 부산의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 직원은 "정부에선 내년부터 지역인재 채용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는데, 이는 현장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정책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른 지역인재에 대한 역차별 소지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인재 풀이 작은 상황에서 일자리에 걸맞은 인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선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비율을 더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7·8일 양일간 열린 '전북지역 4년제 대학교 총학생회장단 및 부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전국혁신도시협의회장인 김승수 전북 전주시장은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35% 의무채용 법제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시장은 "법률 취지대로 지역인재 35% 의무채용이 강제화 된다면 그 효과는 지역에 대기업을 유치한 것과 같다"며 "청년들에게 더 큰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지역 대학과 지역정치권, 행정이 마음을 모아 반드시 쟁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힘을 모으는 모양새다. 전북 전주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은 지역인재 채용을 35% 이상으로 강제하는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놓고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현장과 학계에선 지역인재 채용 확대 주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공공기관이 자칫 해당 지역만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는 '지역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단 이야기다.

서울에서 혁신도시로 이전한 A 공공기관의 인사 담당자는 "지역인재 채용이 사실상 의무화되고 지자체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지역인재 채용 비율을 억지로라도 높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미래엔 해당 지역 직원들이 조직을 장악하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전체 국민을 위한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지역인재 비중이 너무 높아질 경우 해당 지역만을 위한 서비스에 치중해 지역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지역인재 할당제 확대가 오히려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동훈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지역인재 채용을 늘리는 것은 좋다"면서도 "그 비율을 너무 높게 강제할 경우엔 우수인재 채용이란 전체적인 효율성 면에선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인데, 최근 신입사원을 지역 인력 위주로 충당하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이 과도해질 경우 인적 질 저하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 공공기관, 직접 인재역량 키우기 나서

이같은 우려에 대해 정부는 지역인재의 역량을 키우고 채용 대상 대학의 지역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보완책을 마련한단 계획이다.

지난 21일 국토교통부는 지역인재 우선채용범위 변경 등을 위한 혁신도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혁신도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전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우선 채용 지역 범위를 이전공공기관이 소재한 시·도로 하되, 지역 구직자의 취업기회 확대를 위해 대구와 경북지역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우선 채용범위를 하나의 권역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 안시권 부단장은 "지역인재 채용 범위 확대 등을 통한 혁신도시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혁신도시가 지역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의 성과에 따라 나머지 혁신도시도 채용범위를 권역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변재연 사업평가관은 "적격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과 공공기관이 교육·연구 협력을 강화해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며 "지금부터라도 지역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적어도 4년 뒤엔 정부의 취지에 걸맞는 지역인재 채용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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