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자동발매기 놔두고 매표소로 향하는 승객
인력부족 핑계 안내 부실…고객시간·세금 '줄줄'

▲ 지난 22일 서울역사 2층 매표소가 승객들로 붐비고 있는 반면 자동발매기는 한가한 모습이다. 사진=천동환 기자

[일간투데이 천동환 기자] KTX 후속으로 시속 430㎞를 목표로한 '해무430X' 개발이 한창이다. 고속열차 속도 올리기에 여념 없는 코레일이지만 정작 서비스 속도를 올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간단한 안내조차 받지 못 한 승객들은 빠른 자동발매기를 놔두고 매표창구의 긴 줄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린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된 철도 역사내 자동발매기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고객들의 소중한 시간만 낭비되고 있다.


◇ 창구에 버려지는 고객들의 '10분'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서울역사가 열차이용객들로 북적이는 가운데, 한 편에서는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승차권을 구입하려는 승객들이 바로 옆 텅 빈 자동발매기를 놔두고 수십명이 줄지어 기다리는 매표창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혹시 기계에 이상이 생긴건 아닌지 확인해 봤지만, 모두 사용 가능한 상태였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8시간 30분간 지켜본 서울역에선 동일한 현상이 지속됐다.

2층 매표소 우측에 설치된 16대의 자동발매기를 동시간대 이용하는 승객은 평균 3~4명에 불과했다. 매표소 줄은 계속 길어지는데, 자동발매기 앞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자주 목격됐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 사장 홍순만)에 따르면, 자동발매기는 이미 발권한 표의 승차시간 등을 변경하거나 매표창구에서 구매한 승차권을 환불하는 것 외에 모든 매표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 자동발매기는 현금 또는 신용·체크카드를 통한 표 구매(모든 좌석 및 입석)는 물론, 예약표 찾기 및 취소, 환불(단, 자동발매기로 구매한 승차권) 등 창구에서 수행하는 대부분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서울역사 2·3층에는 총 29대(현금겸용 10대)의 열차승차권 자동발매기가 설치돼 있다.

▲ 자동발매기는 열차 전좌석 구매는 물론 예약표 찾기 및 취소, 승차권 환불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천동환 기자

매표소 이용을 마친 승객 수십여명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이용자 절반은 자동발매기에서도 가능한 업무를 창구에서 처리해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통상 창구에서 승객 1명이 업무를 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3분 정도인 것을 고려할 때, 앞에 대기자가 10명만 있어도 최소 10분은 기다려야 한다.

창구에서 입석표 구매를 마친 한 30대 후반 남자 승객에게 자동발매기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기기에서 입석 발권이 가능하지 몰랐다"고 답했다.

50대 중반의 한 여성은 스마트폰으로 예약한 표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다가 지나던 다른 여행객에게 방법을 묻더니 결국 매표소의 긴 줄에 합류했다. 기자가 다가가 자동발매기 이용법을 알려주자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승객들에게 기기 이용을 안내하는 역사 직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동발매기에서 모든 열차의 좌석·입석·자유석 승차권 구입이 가능하다"는 배너광고판과 다 읽기도 전에 지나가 버리는 전광판 안내가 전부였다. 그 마저도 열차시간을 안내하는 전광판이 아니어서 승객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내소의 한 직원은 "보는 것 처럼 안내소만 운영하는 것도 벅차다"며 "발매기 이용까지 안내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코레일 관계자는 "기기 도입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안내와 홍보를 진행했지만, 이제 승객들 대부분이 이용법을 알고 있어 예전처럼 하고 있지 않다"며 "매표소 줄이 길어질 경우 안내방송을 통해 자동발매기 이용을 권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서울역에 머무는 동안 관련 방송은 단 한 차례도 들을 수 없었다. 이튿날인 23일 오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비단 서울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날 서울 용산역에서 상황은 마찬가지 였다. 자동발매기 이용률이 극히 저조했고, 그나마 서울역에 설치돼 있던 안내배너 마저 이곳엔 없었다.

▲ 지난 23일 서울 용산역사 매표소(위)에 승객들이 긴 줄을 서있는 반면 자동발매기는 한가한 모습이다. 사진=천동환 기자

 

◇ 국감 지적에도 나몰라라 '공사의 배짱'

한편, 코레일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도 부실한 자동발매기 운영을 지적 받은 바 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전 의원은 "철도역사 인력효율화를 위해 설치한 승차권 자동발매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코레일이 박 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279대의 자동발매기가 총 418만장을 발매해 1대당 일평균 73건을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정 발매수인 141매에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체 승차권 발매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줄어 지난 2010년 13.7%였던 것이 2014년에는 6.9%까지 감소했다.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발매가 증가한 것이 자동발매기 이용률 감소에 주도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코레일의 부실한 관리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동발매기의 대당 설치 가격은 신용전용과 현금·신용겸용이 각각 840만원과 1100만원에 이른다. 또, 연간 유지보수 비용은 총 2억 3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의 나몰라라식 자동발매기 운용이 철도고객의 소중한 시간은 물론 막대한 세금 낭비까지 초래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