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5만원 이하 저가 추석선물세트 출시 '봇물'
'내수 침체' VS '영향 제한적'…전문가들 전망 엇갈려

▲ 지난 29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에 마련된 추석선물세트 판매장에서 판촉직원들이 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일간투데이 김수정 기자] "가격이 부담된다면 여려개 주문하면 할인도 해주고 있으니까 둘러봐요"

지난 29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식품관에 마련된 추석 선물세트 판매코너는 시행전인데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퇴근시간대였기때문에 쇼핑객을 많았다. 식품관 한가운데 위치한 선물세트 배송서비스 창구에는 4~5명이 상담을 받고 있어 선물세트 수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선물세트 판촉 직원들은 10만~20만원대 선물세트가 가장 잘팔린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란법에서 정하고 있는 5만원을 넘는 액수다.

그러나 그간 고가의 프리미엄 선물세트를 중심으로 판매하던 백화점이었지만 올해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저렴하게 나왔다며 구매를 적극 권하는 한편 10만원 이하 혹은 10만원대 초반 상품이 진열된 매대들이 눈에 띄었다.

한 직원은 4만9000원짜리 선물세트를 보여주며 "김영란법때문에 나온 기획 세트다"며 "구성도 좋고 가격대도 부담스럽지 않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여·27)씨는 "아직 법 시행전이라고 하지만 의식을 안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며 "무턱대고 싸다고 해서 선물을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 고민이다"고 토로했다.


◇ 소비시장은 벌써 '사정권' 내

온라인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8월 23~29일) 기준, 지난해 추석 전 동기(9월 4~10일) 대비 추석선물세트 판매 신장률을 조사한 결과 바디(188%)와 헤어(84%) 등 생활용품 선물세트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어 비타민 선물세트와 홍삼 세트도 20% 이상 판매가 늘어났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비교적 저렴한 온라인을 선택한 소비자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추석선물세트 판매 동향'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는 올해 선물세트 출시일부터 지난 25일까지 사전예약 판매 상품 중 판매비중이 가장 높은 가격대는 3만~5만원(56.2%)선이었다. 이어 3만원 미만이 22.8%였으며 5만~10만원대와 10만원 이상 상품 비중은 각각 1.1%, 19.9%에 그쳤다.

특히 3만~5만원선 선물세트 비중은 지난해(35.6%) 보다 20.6%p나 늘었다. 반면 10만원 이상 가격대 상품은 전년비 비중이 8.9%p 낮아졌다.

올해 유통업계는 추석 대목을 앞두고 유독 저가 상품 집중하고, 할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선물가격은 5만원이다. 다음달 28일부터 법이 시행되지만 심리적 영향을 고려한 조치다.

이번주부터 본격적으로 추석선물세트를 판매하고 있는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5만원 이하 제품 총 9만세트를 준비해 지난해 보다 60% 늘렸다. 어획량이 감소해 원물 가격이 상승한 갈치도 인상을 최소화해 지난해 추석과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했고, 가격 부담이 높은 한우는 원하는 부위, 등급, 중량에 맞춰 원하는대로 포장이 가능한 'DIY' 서비스를 올해도 실시했다.

롯데백화점도 10만원 이하 중저가 선물세트의 물량을 전년보다 25% 이상 확대했으며, 특히 건과 및 와인 등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물량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렸다. 또 롯데백화점은 소비자현장경품 규제가 폐지된 이후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경품행사를 추석시즌에 맞춰 진행한다.

현대백화점 역시 실속세트 물량을 전년 대비 20% 확대 편성했다.

원체 저렴한 가격대의 선물세트를 선보였던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도 백화점과 상황은 비슷했다. 대형마트는 생활 가공식품 물량을 늘리고 온라인몰은 가성비 좋은 상품으로 구성한 기획전이나 할인 혜택을 주는 프로모션을 열고 있다.

 


◇ 유통가, '전전긍긍'…"뚜껑 열어봐야"

벌써부터 김영란법을 의식한 소비심리가 반영되고 있지만 유통업계는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향후 매출에 어떤식으로 타격을 줄지 예상이 어렵기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청탁성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기때문에 해석하기 나름인 것 같다"며 "곧바로 소비가 줄어들지 미미할지, 그리고 줄어든다면 매출에는 얼마나 타격이 있을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안 시작 전이기때문에 뚜껑을 열어봐야한다"며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렸다. 법안이 정해놓은 가격 상한선이 있기때문에 내수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 한편 모든 유통업계가 타격을 입기보다는 제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준표 연구위원은 "일단 마이너스 효과는 있다"며 "소비 부진이나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 등으로 3분기 소비가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때 김영란법이 시행돼 음식과 서비스업 중심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골프장 등 고급레저도 타격은 있겠지만 국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아닌 것 같고 자영업들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숙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음식점은 기업들이 식사대접을 하던 문화가 있었기때문에 영향은 있겠지만 소매업은 다르다"며 "선물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때문에 백화점 및 마트 등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때 김영란법이 내수진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준표 연구위원은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부패인식지수가 굉장히 낮다"며 "당장 내수에 부정적일지는 몰라도 기업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고 시장 경제에 질서가 잡히면 중장기적으로 플러스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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