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법무법인 청목변호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첫 날 전국에서 김영란법 관련해 신고된 건이 1건 있었다고 한다. 모 대학에서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주었다는 것을 다른 학생이 보고 신고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신고자는 자신의 이름 등을 밝히지 않았고, 결국 경찰은 별다른 조치 없이 이 사건을 입건하지 않았다. 무분별한 신고로 인해 일상적 사회생활이 곤란해지고 무고와 경찰력의 낭비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100만원을 초과하는 현금, 선물 등 금품수수 관련 신고에만 현행범 또는 준현행범으로 간주해 출동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과연 교수에게 1000원짜리 캔커피를 건넨 학생이나 이를 받은 교수는 김영란법에 의하여 처벌 대상이 되는가?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이상 또는 회계년도 합계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는 경우를 금지하고 있고(1유형), 위 금액에 미달되더라도 직무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대가성 유무를 불문하고 일체의 금품을 수수하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2유형),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 및 의례적인 범위의 3만원 이하의 식사, 5만원 이하의 선물, 10만원 이하의 부조 등은 허용하고 있다(3유형).

■ 여러 사정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

대학 교수는 김영란법의 수범자에 해당하고, 대학교수와 학생 관계는 직무관련성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대학교수는 대가성 유무를 불문하고 학생으로부터 일체의 금품 등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이다(2유형). 그러나 위 학생이 교수에게 준 커피를 사교적, 의례적인 선물이나 식사로 보게 된다면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예외적인 허용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다(3유형).

그렇다면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는 법 위반행위에 해당되고, 어떠한 행위가 허용되는 사교적 의례적인 행위가 될 것인가. 오늘 신고된 위 첫 사례의 경우에 대해서는 의례적, 사교적 행위에 해당된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 학생이 시험성적을 올려달라고 하는 등의 부정한 청탁을 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로서 캔커피를 건넨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또한, 학생이 교수에게 준 것이 커피가 아니라 값비싼 양주였다거나, 교부의 장소가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교수실 등이었다거나, 교부의 시기가 시험성적 처리 기간 중이었고, 평소 위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 등에 비추어 그러한 선물을 줄 만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모든 사안에서 법위반 사례와 그렇지 않은 사례가 분명하게 판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통용되던 ‘이 정도는 사교적, 의례적 식사와 선물이겠지’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상은 김영란 법의 제재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학기 중 여름 방학에 외국에 나갔다가 오던 학생이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에 10만원짜리 넥타이를 선물한다거나, 초등학교에 학생의 학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고 하면서 7만원 정도의 음료와 케익을 사서 선생님께 드리는 것도 모두 김영란법에 의하면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 당장 불편함 견디면 투명 사회 기대

이러한 현실과 규범의 괴리는 규범 준수자들로선 매우 당혹스럽고 불편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오죽하면 일부 언론과 법률가조차 김영란법은 사회관계 단절법이고, 내수 소비시장을 위축시키는 위헌적인 법이라 말했겠는가.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적절하게 판단했듯이, 우리가 김영란법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관행이 잘못됐던 것이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있던 사람이 병원에서 강제로 허리를 펴게 되면 당분간은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면서 수술이 잘못됐는지 의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위 환자가 당장의 불편함을 견뎌 낸다면 굽어 있던 허리가 펴짐으로 인해 신체와 생활의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법 시행으로 인한 당장의 불편함과 혼란을 이겨낸다면 이로 인한 투명한 사회와 그로인한 새로운 성장 요인을 맞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인맥과 부정한 청탁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실력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투명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법 시행 과정에서 문제되는 부작용은 법 집행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원의 판례 형성과 법개정 등으로 보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영란법의 조기정착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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