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국회 본회의에 김황식 총리 해임건의안이 제출됐다.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밀실 추진’ 책임을 묻겠다며 민주통합당이 낸 것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이 표결을 선언하자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줄을 서 투표를 시작했다. 그러자 본회의장에 있던 새누리당 의원 80여명이 일제히 퇴장했다. 총리 해임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재적 의원 과반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해임건의안 표결에 참석한 의원은 138명에 불과했다.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않은 채 강 의장이 방망이를 두들겼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이 안건에 대한 투표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기에...

2015년 12월 9일 19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다. 서비스발전법·테러방지법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큰 상태였다. 114건의 법안을 처리한 후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회를 선포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국회의장실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머리를 맞댔다. 그 사이에 변수가 생겼다.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나가버린 것이다. 여야 회담이 결렬되고 정 의장이 본회의장으로 돌아와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의결정족수 8명이 부족했다. 특히 야당 의원석이 많이 비었다. 여당 의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의원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 이종걸 원내대표와 부대표들이 ‘실종 의원’들을 찾아와 간신히 의결정족수를 맞췄다. 3개 법안을 더 처리하고 본회의가 폐회됐다. 의결정족수는 국회 등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찬성 의원 수’를 의미한다. 헌법 49조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 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글자를 따서 ‘재과출·출과찬’으로 부르기도 한다.

법안 처리에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이기에 청와대와 여야 정당엔 늘 의결정족수를 따지는 ‘머릿수 헤아리기’ 전문가들이 포진돼 있다. 대통령 탄핵은 헌법 개정, 의원 제명 및 의원 자격 상실과 함께 재적 의원 3분의 2가 필요한 특별 의결정족수 규정에 해당한다. 사안이 그만큼 중하기 때문이다. 지금 의석 분포로는 121석의 더불어민주당, 38석의 국민의당, 6석의 정의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을 모두 합쳐도 탄핵에 필요한 200석에서 29석이 부족하다. 경우에 따라 단 한 표로 대통령 운명이 바뀔 수 있다. 앞으로 정국은 탄핵 찬반 세력간 ‘의결정족수 전쟁’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초래된 보수의 위기가 보수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대통령 탄핵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새누리당 전 대표로 저부터 책임지고 내려놓겠다”며 차기 대선에 불출마하고 5년마다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비극’을 막기 위해 개헌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 ‘피해자 행세’가 보수 대안은 아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여당의 핵심 인사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처음으로 책임을 지고 보수 정당을 구하겠다며 나선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각종 여론조사가 말해주듯 지금 새누리당과 그 당에 몸담고 있는 자칭 타칭의 대선주자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내년 대선 때까지 새누리당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위기 상황이다. 친박(친박근혜)이 외부 인사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기다리느라 내년 1월 21일 전당대회를 고집하는 것도, 김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 결심도 이런 현실 때문일 것이다. 수구적인 발언. 색깔론을 무수히 제기하며 정치판을 흐려온 그가 합리적 보수가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친박 세력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쥐고 버티는 상황이니 그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으로는 보수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과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인하고 통렬히 참회하는 분명한 자기청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경택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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