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과 식구들 품앗이

가족 이야기


"거기 그렇게 나무 등걸처럼 서 있지만 말고 무 채라도 썰어줘요. 나도 힘들거든요"

홀로 김장하는 모습을 멀뚱하게 바라보던 내게 아내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날 이전까지는 아내가 김장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퇴근하면 양념을 묻힌 배추들이 채워져 있는 김치통들을 냉장고에 넣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곤 겉절이와 수육을 먹으며 "맛있네"를 연발하는게 전부였다.

모처럼의 휴무일이어서 김장하는 현장을 보게 됐지만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던 터였다.'별로 어려울 것도 없겠다' 싶은 생각에 채 칼을 들고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손 아귀가 아프고 뻣뻣해 질 정도였다. 아내는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김장하는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겠느냐는 듯한 표정처럼 느껴졌다. 모든 과정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5년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매년 겨울 함께 김장을 한다. 해를 거듭할 수록 김장하는게 '상당한 육체 노동'임을 절감한다. 준비하고 마무리하기까지 이틀은 잡아야 하고 나중에 찾아오는 어깨와 허리 결림은 고통스러운 덤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툴게 거드는 수준이어서 아내의 수고로움과 고단함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 방도는 없다.

올 해 김장은 이번주 초에 끝냈다. 휴일을 잡아 여유롭게 하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평일에 올빼미 처럼 이틀 동안 퇴근 후부터 새벽 2시까지 매달려야 했다. 첫날은 배추와 무를 비롯해 갓, 쪽파, 대파, 양파 등등을 다듬고 자르고 씻느라 잠을 줄였다. 둘째 날은 양념 버무리고(땀 나게 힘든 과정) 속을 칠하고 차곡차곡 김치통에 담아내고 뒷정리를 하느라 쪽잠을 잤다. 시간이 넉넉찮은 맞벌이 부부의 김장은 '야간 속도전'에 가까웠다. 그래도 내년 먹을 가장 큰 밑반찬을 마련해 두니 흐뭇하고 후련하고 뿌듯하다.

'두 손이 한 손보다는 낫다'고 한다. 거들어 주려는 식구들의 품앗이는 늘 고맙고 힘이 된다. 여동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큰 처남의 도움이 가장 크다. D데이가 다가 오면 열일 제치고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들러 웬만한 김장 재료는 거의 다 구매해 준다. 차를 몰고 각종 김장 재료를 직접 전달하는 택배기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 꿈을 이루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자발적인 취업준비생 대열에 합류한 작은 딸과 몇차례 김장 담그기 봉사활동을 했던 대학생 막내 아들은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일손을 돕는다. 시집간 큰 딸은 현금을 송금하는 것으로 성의를 표시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생색만 내는 거야. 어차피 나중에 (공짜로) 김치 달라고 할 걸, 뭐"


2년 쯤 전에 김장하는 게 힘들고 번거롭고 귀찮고 꾀가 나서 아내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앞으론 김치 사서 먹읍시다"
"비싼데다 양도 작아요. 아까워서 김치찌개도 못 끓여 먹겠어. 더구나 조미료가 들어갔을 수도 있을까봐 찜찜해요. 나는 그냥 하던대로 할테니 (당신은) 빠지려면 빠져요"
늘 부지런을 떨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숱한 아내들도 비슷한 심정이겠거니 싶었다. 그래서 묵묵히, 하지만 기꺼이 매년 겨울 결석하는 법도 없이 찾아오는 '연례 노동 행사'에 참여한다. 마님의 지시를 따르는 머슴처럼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김장이 끝난다.

온 몸이 뻐근하지만 양념과 수육을 얹어 돌돌 말은 노오란 배추 속 잎을 입에 넣는 순간은 달콤하고 즐겁다. 그리곤 혼자 중얼거린다. '에궁, 내년 이맘때도 또 고생해야겠군'



도자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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