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실 우리나라 현대사는 분화를 통한 발전의 전형으로 묘사될 수 있다. 거칠게 분류하면, 산업화세력이 강력한 국가주도 성장정책으로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고, 민주화세력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해 전후 피식민지국가에서 거의 유일무이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중과제를 동시에 완수했다.
하지만, 통섭이 유행할 당시 우리나라 사정은 더 이상 분화를 통한 발전이 빛이 아니라 대립과 갈등의 만연이란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산업화 세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연거푸 집권에 실패하자 잔뜩 약이 올라있었고,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집권에 성공한 민주화 세력은 기존의 산업화 패러다임을 '반칙과 특권'으로 규정하며 일거에 역사를 바로 세우려했다.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에 컴퓨터와 TV, 라디오 등 온갖 기능을 집어넣은 스마트 폰을 내놓은 이래로 '융·복합(convergence)'이 화두로 떠올랐다. 더 이상 자동차 회사는 자동차 개발 기술 하나로 승부할 수 없고, 휴대폰 회사도 휴대폰 제조로서 자족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자동차회사와 휴대폰회사가 서로 손잡고, 기업이 정부·시민단체와 손을 맞잡아야 극심한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이런 융·복합 시대에 부응해 여러 정부 부서 기능을 통합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그 산하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세워서 정부와 지자체, 대기업이 협업해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한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한달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헌법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와 책임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일개 사인에게 자신의 권능을 방기했고,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그 사인과 그를 둘러싼 이권세력의 사익향유의 도구, '놀이터'로 전락했다. 융·복합이 아닌 '뒤죽박죽', '뒤엉킴'의 전시장이었다.
21세기 생존의 화두 융·복합이 10여 년 전 통섭이 우리 담론시장에서 한때 유행으로 흘러간 전철을 밟지 않도록 다시 한 번 공공부문의 감시와 견제 시스템을 정비해서 '질서있는 융·복합'을 모색해야 할 요즘이다.
이욱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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