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분노 속에 절제 있는 민심의 조류가 재확인됐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 농단에 ‘주범 격 공범’으로 규정된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에는 232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이 참가, 집회 역사를 새로 쓰고 있을 정도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국민들의 바람은 '역대급' 신기록들을 갈아치운 집회·시위 참가가 수가 뒷받침하고 있다. 단일집회 기준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연인원 600여만명을 넘어서 1987년 6월 항쟁(연인원 최대 500만명 추정)을 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주요도시 집회 장소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한결같이 박 대통령의 진정성 담긴 과오에 대한 사죄와 확실한 퇴진을 촉구했다. 그렇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지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무능과 부패로 상징되는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세 차례 담화에서 보듯 진실함이 결여된 ‘꼼수용 대처방식’으로는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민적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박 대통령 자신과 집권층을 향한 국민적 단죄의 메스가 턱 밑에 와 있음을 뼈아프게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작금 정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안 발의로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9일 표결하기로 했다. 탄핵 의결에 동조했던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가 ‘선(先)퇴진협상’을 내걸자 발의는 서두르되 표결은 일주일 뒤로 늦춘 것이다.

탄핵안 발의로 탄핵 열차는 제 궤도에 오른 셈이다. 비박계는 ‘7일 오후 6시’를 퇴진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그때까지 국회가 대통령 퇴진 일정을 합의하든지, 대통령이 ‘4월 말 퇴진’을 공개 선언하라는 것이다. 야 3당이 탄핵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사실상 남은 카드는 박 대통령의 결단뿐이다.

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진,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는 사안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같은 모호한 태도로는 탄핵 표결을 막지 못하고, 국정 공백과 국가 표류 상태를 가중시킬 뿐이다. 탄핵안 의결의 열쇠를 쥔 비박계 시한을 감안하면 남은 사흘이 향후 정국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시기다.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건 여야 협의를 통해 대통령 퇴진 및 과도내각 구성, 조기 대선 일정을 합의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바라는 민심이 거센 게 사실이지만 안정적인 국정 수습, 정권 이양을 위해 대타협을 이뤄내는 정치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야권이 이런 노력은 시도하지도 않은 채 촛불 민심에만 기대겠다면 9일 탄핵안 가결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비박계에서는 퇴진 협상 여지마저 봉쇄한 야당 태도를 비판하는 이들이 적잖다.

예컨대 비박계 이탈로 탄핵이 부결될 때는 물론 탄핵이 가결되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체제가 들어선다. 이를 야당은 원치 않을 것이고, 더구나 누가 후임 총리를 지명할 것인가. ‘질서 있는 퇴진’을 위해 박 대통령은 ‘4월 퇴진’을 명백하게 밝히고, 야당 주도 국회 추천 총리로 하여금 내·외치 국정을 챙기도록 함으로써 6월쯤 대선을 치르는 안정적 헌정을 이어가는 게 합리적 방안임을 거듭 강조한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