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정별님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하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두 달이 지났다. 춘천에서는 고소인이 조사 시간 편의를 봐 준 경찰관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며 45,000원 상당의 떡을 보낸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 사례로 신고 되었고, 불명예스럽지만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허용되는지, 아니면 청탁금지법에 위반되는 행위이므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갑론을박도 있었지만, 결국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교수에게 캔 커피를 주거나 교사에게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주는 행위에 대해 교수·교사와 학생은 직접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만큼 5만 원 이내의 선물이라고 해도 허용될 수 없다는 이유로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최종적인 유권해석을 내렸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공공기관 공무원들이 일반 기업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리면서 접대문화가 사라지고,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는 긍정적인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지만, 반면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나친 확대해석과 판례의 부재에 따른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다. 교권침해로 인해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데다 청탁금지법까지 겹쳐 명예훼손적 상실감을 느끼고 교단을 영원히 떠나려고 마음먹은 교사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또한 직무관련성이 없는 일반인들까지도 3·5·10 기준에 해당되는 줄 아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 법 적용과 관계없는 민간활동까지 위축되었고, 청탁금지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소상공인들이 폐업을 고민할 정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우니 이 법을 당장 없애자고 나서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혼란을 기꺼이 감수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깨끗하고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수수한 금품이 45,000원이 아닌 4,500원이라고 해도 법에 위반되는 상황이라면 응당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법의 실효성을 유지하면서 혼란도 잠재울 수 있는 묘안을 짜내보자고 했다.

그런 와중에 최근 붉어진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전대미문의 국정농단사태는 식사 한 끼, 캔 커피 한 개, 카네이션 한 송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청렴한 사회를 꿈꾸던 전 국민의 기대에 찬 물을 끼얹어 버렸다. ‘스승의 날 교사에게 카네이션을 줄 수 없다면 손편지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하면 된다.’, ‘캔 커피가 안 된다면 교수님 탁자에 시원한 물 한 잔 놓아드리면 된다.’는 갸륵한 국민들의 노력은 대통령이 개입된 엄청난 권력형 비리 앞에 웃음거리로 변질되고 희화화됐고, “왜 높은 사람들은 놔두고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민초들만 건드리느냐”는 허탈한 상실감으로 되돌아왔다. 법 준수에 회의감이 느껴진다. 썩을 대로 썩은 윗물이 아랫물에 맑기를 강요한다면, 아랫물은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하지 않겠는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변호사 정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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