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총수들을 출석시킨 가운데 진행된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는 열기만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면죄부 부여’요 맥 빠진 청문회였다. 15일 4차 청문회까지 예정된 가운데 6일 열린 1차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룹 총수들은 하나같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허창수 전경련 회장 등 모두 9명의 총수가 출석했다.

재벌 총수들은 청와대의 기금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며 강제성은 일부 시인하면서도 사업 특혜나 총수 사면 등을 위해 청와대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러면서 최순실과 그의 딸인 정유라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한결같이 부인했다. 청문회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의원들로부터 단연 집중 질문을 받았다. 삼성이 최씨 일가를 지원한 대가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찬성표를 답례로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변은 공허했다.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양사에 합병이 자신의 승계와는 관계가 없다며 삼성 계열사에 국민연금이 제인 큰 투자자고 제일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피해자 측면을 강조한 총수도 많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고,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청와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물론 소득도 없지 않았다. 한화가 정유라에게 8억3000만원 상당의 네덜란드산 말 두필을 지원한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경우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둘러싼 그간의 의혹과 관련,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야기는 저희 그룹에 있는 이미경 부회장이 조금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고 들었다"며 "조 수석은 그게 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밝혀 대통령이 민간기업의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권한 남용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함으로써 청문회 이후 특검 수사가 주목된다.

그러나 재벌총수들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통적으로 질문을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여부를 분명하게 판가름할 수 있는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다. 사실 이번 청문회는 대한민국의 오랜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게 목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석한 재벌총수들은 발뺌하기에 급급했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일부 재벌총수들의 선친들도 1988년 5공청문회에서 정경유착의 ‘공범’으로 지탄받은 바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 세대가 흐른 오늘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정경유착이 대한민국 경제구조와 자본주의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권력층이나 기업이나 경제민주화로 가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경제구조를 풀어나갈 수 없다는 진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벌들이 향후 진행되는 청문회에서 국민들에게 고백한 뒤 권력에 유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기술과 기업문화로 새 출발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물론 권력이 기업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권을 챙기겠다는 불순한 의지를 버리는 게 우선임은 분명하다. 이게 청문회의 교훈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