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부분 가발

[도자리의 가족이야기]

아내의 부분 가발

딩동~”

꽤 오래전 어느 토요일 오후. 모두 외출하고 휑한 집안에서 혼자 뒹굴뒹굴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택배 기사님이 박스를 건넸다. 무심코 받아서 생각 없이 대충 밀어두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아내가 상자를 뜯고 있었다. 내용물은 여러 형태의 부분 가발들이었다. 진작부터 "머리 숱이 없어서 속이 다 보여요. 아무래도 가발을 써야 할 거 같아요"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마침내 거사(?)를 감행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이것저것 꺼내 머리에 대 보면서 "어때, 어울려요?"라고 물어댔다. 미용에는 전혀 관심없는 무지렁이이지만 "좋네요"를 연발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안함과 애잔함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1998년도로 기억된다. 발이 너무 붓고 아파 절절 매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이 지경이 되도록 미련하게 참고 있었느냐'는 응급실 당직 의사의 질책을 받고 입원해 6개월 가량을 지내야 했다. 아내는 겨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둘째딸을 친정에 맡기고 병 수발을 들었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다 '심할 경우 나중에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료진의 설명도 뒤따랐다.

아마도 아내는 한창 일해야 할 시기인 남편이 잘못하면 장애자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상상도 못할 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그저 내가 힘들어 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는게 전부였다.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 간호사실까지 뛰어가 진통제를 부탁했다. 병실에서는 웃어 주고 때론 간식거리를 챙겨 주었다.

천만다행으로 재활 끝에 혼자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65㎏이었던 체중이 45㎏가 되어서야 병원 문을 나섰다.

"입원하고 수술했을 때 심장이 마구마구 쫄아 붙었던거 같아요. 그 때부터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더라구요. '이러다 몽땅 뽑혀 나가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날 정도로, 많이~~~" 어느 날 아내가 들려 준 얘기는 아직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찡하게 남아 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아직까지 건강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내 자신이 마냥 한심하다.

아내는 한동안 부분 가발을 열심히 애용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는 그냥 외출한다. 아마도 심드렁해졌거나 귀찮아서이겠거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칠칠치 못한 서방 침대 곁의 보호자용 긴의자에서 살풋 잠이 든 모습은 애처로웠다. 그 당시 내게 보내준 손길과 눈길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정말로 누구라도 발모제 개발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호되게 비싸겠지만 형편 닿는 만큼은 구입해서 선물하고 싶다. 문득, 푸릇푸릇하던 청춘 시절 허리까지 내려온 채 찰랑거렸던 아내의 긴 생머리가 떠오른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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