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 핸드폰

[도자리의 가족이야기]

구닥다리 휴대전화

'아빠, 우리 회사에서 싸게 나오는 휴대폰이 있는데 사 드릴까영?'
'좋지요. 내건 벌써 5년도 넘었네, 고물이지, 뭐'
'ㅇㅇ 근데, 싼거야. (최신형인) 노트 그런거 아니고 보급형. 색상은 까만색? 흰색?'
'까만색ㅎㅎ'

지난 8월말. 큰 딸이 뜬금없이 휴대전화를 바꿔 주겠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아마도 지난 2011년에 구입한 뒤 바꿀 생각도 하지 않고 구닥다리 3G폰을 애용하는 아빠 보기가 답답했던 모양이다. 은근히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큰 딸은 핸드폰과 관련된 회사에 다닌다. 새 제품을 구입하고도 업무때문에 필요한지 얼마쯤 지나면 기기를 교체하곤 한다. 딸이 쓰던 핸드폰은 자연스레 엄마에게 무상으로 물림이 된다. 덕분에 아내는 신상에 가까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혜택을 누린다.

기계치인 나는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먼 편이다. 복잡한 기능을 훌륭하게 활용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닥 부럽지도 않고 별로 관심도 없다. 기껏 쓴다는게 전화 걸고 받고, 문자나 카톡 주고 받는 정도가 전부이니 딱히 불편할 것도 없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별의 별 애플리케이션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면서 은근히 짜증이 나기는 하던 터였다.

꼭 필요한 앱을 내려받기 하려해도 아예 먹통이 되거나 '버전이 오래되었습니다'는 식의 안내문이 뜨기 일쑤였다. 그럴때면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일을 처리해야 했다. 마음 한켠에서는 '이 참에 확 새걸로 사고 말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참이었다.

며칠 후 딸이 구입해 준 새 휴대전화가 내 손에 들어왔다. 검은색이 다 팔렸는지 흰색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천성이 느긋한 편이라 차일피일 기기 변경하는 것을 미뤄뒀다. 두어달 쯤 지나자 보다 못한 아내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딸이 사준건데 빨리 바꾸시지. 참~~~" 결국은 아내 손에 이끌려 대리점을 찾았지만 당장 새 핸드폰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나도 기억나지 않는 할부금 같은게 있어서 그게 끝나려면 연말이나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굳이 바꾸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말도 친절하게 덧붙여졌다.

세밑이라 공연히 마음이 바쁘다. 이런 저런 모임은 피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새 핸드폰은 내년 초나 돼야 제 구실을 할 듯 싶다. 사실 그리 급할 것도 없고.

가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처지인 새 핸드폰을 꺼내 본다. 무심코 검은 바탕 액정화면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딸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러면서 이런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하다.

"큰 마음 먹고, 사 드렸으니 얼른 개통해요. 에궁, 이 게으른 아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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