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형

작년 이맘때쯤 군에 입대하기 바로 전날 밤. 불안하고 긴장된 마음에 밤잠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군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입대 당일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을 뒤로하고 훈련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짐했다. 아무리 고된 훈련일지라도 모든 훈련을 ‘성실히’ 받겠다고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성실’이라는 가치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주어진 훈련을 열심히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훈련소 수료를 얼마 앞두지 않았을 무렵,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종합평가를 공부하던 중에 교본에서 군인이 지녀야할 성실의 의무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성실’을 뜻하는 영어 'sincere'은 본래 “밀랍이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 ‘sine(without) cera(wax)'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옛날 로마 시대의 대리석 조각공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각상에 흠이 있으면 조각상을 제 값에 팔 수 없었다. 때문에 조각상들은 그 조각상의 흠에 밀랍을 발라 메우고 상인들을 속여 조각상을 팔아넘겼다. 하지만 훗날 밀랍이 태양에 녹아내리고 비바람에 쓸려 내려가게 되면 그 흠은 여지없이 드러나 가짜임이 들통 나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만든 조각상엔 "밀랍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품을 만들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음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동양에서는 성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성실(誠實)’은 한자로 ‘정성을 다한다’는 뜻의 ‘성(誠)’과 ‘열매’를 뜻하는 ‘실(實)’의 합성어다. ‘성(誠)’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쳐진 글자다. 즉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이 말한 것을 이루는 ‘말의 성취이자 완성’을 의미한다. 자신과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실천의 결과는 열매인 ‘실(實)’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보고 우리는 ‘성실(成實)’이라는 가치가 실현되었다고 말한다.

삶을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살아가면서 듣게 되는 일종의 격언이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성실이라는 가치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순히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성실에 관한 위 내용을 읽고 나는 ‘성실’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성실’이란 결국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신과의 약속을 굳건히 지키는 것임을 말이다.

‘성실’은 우리 삶에서 소중히 여겨야할 덕목 중 하나다. 성실한 삶의 구현은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가 아니라,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그 여부에 달려있다. 성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양심을 밀랍으로 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에 했던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되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올해 2016년의 막이 내리고 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본다. 연초, 나 스스로와 맺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면서 성실히 살아왔는지 자문해본다.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성실한 한 해를 보냈기를 기원해본다.

<권순형 강원대 행정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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