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 서방

[일간투데이 이동재 기자] 엊그제 새벽에 눈이 왔다. 그날 따라 공연히 잠이 일찍 깼다. 하릴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집 밖으로 나갔다. 승용차에 제법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었다. 뚜벅이 신세인 나는 차를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손 시려울텐데'하는 꾀가 나서 머뭇거리다 작정을 하고 모두 쓸어냈다. 햇볕이 들면 어설프게 녹아서 치우기가 영 고약하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수고를 미리 덜어주고픈 마음도 한 몫을 했다.

지난해 가을 작은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아파트에 살았을 때는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워두니 비나 눈을 맞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새로 온 집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지상에서 무방비 상태로 자연환경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만다. 생활하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고 신경 쓸 일도 그리 많지 않아 그럭저럭 지낼 만은 하다. 

어린 시절 우렁각시 이야기를 읽었다. 설화인지 전래동화인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조금씩 또는 많이 다르게 각색된 버전도 적지 않다. 어학사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내용이야 뻔하다. 가난한 노총각이 열심히 논·밭 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 누군가가 매일 자신이 없는 사이에 따뜻한 밥을 차려 놓았다. 워낙 가난하니 장가를 들 수도 없는 처지라 한숨을 쉬면서 "이 농사 지어서 누구랑 먹고 살거나"하면 어디선가"나랑 먹고 살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각이 이상해 둘러보니 얼마 전 논두렁에서 잡아다 솥에 넣어 둔 우렁이 하는 말이었다. 우렁이가 어여쁜 색시로 변신해서 식사를 챙겨 주었다는 줄거리다. 애틋하고 서글픈 결말은 생략하자.

아내가 집에 있거나 없거나 쌓여있는 설거지나 쓰레기 버리기, 수건 개서 화장실에 넣어 놓기 등은 자연스럽게 하는 편이다. 무늬만이라도 '우렁서방'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가정은 부부가 함께 꾸려가는 공간이니 굳이 남녀 역할을 구분하고 따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내 일, 네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니까. 그래서 '도와 준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같이 한다'는 표현은 좋다. 맞벌이 부부조차 여성이 훨씬 많은 시간을 가사노동에 쓴다는 기사를 간간이 접할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두 딸을 둔 아빠여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름 애써서 눈 치웠던 날 오후. 아내에게 '차에 눈 털었어요'라고 카톡을 보냈다. 답변은 좀 엉뚱했다. 내가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랬군요. 나는 눈이 저절로 녹은 줄 알았네요ㅋㅋ 암튼 감사합니당"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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