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기본 요건이다. 오늘날 숱한 직업이 생기고 없어지지만, 추구하는 근본은 같다. 부(富)의 창출이다. 어느 정도의 재물이 있어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로 선거판세를 쥔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하긴 2300여 년 전 맹자도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無恒産無恒心)”라고 했을 정도다. 재산이 없어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주변에 마음을 전하고, 뜻도 펼 수 있으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현실적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성현의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사리가 이러함에도 오늘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오랜 내수 경제 침체에다 미국과 중국 등 해외시장마저 얼어붙고 있다. 설상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이전보다 0.4%포인트나 낮은 2.6%로 하향 조정했다.

■국정혼란 속 턱밑에 와 있는 위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 혼란이 경제로 전이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국내 통계도 잘 말해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연말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6.1포인트 하락한 95.8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94.2) 이후 7년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 같은 대형 먹구름들이 한꺼번에 쉴 새 없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위기는 이미 턱밑까지 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미래를 위한 실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스위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2020년까지 선진국에서는 71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향후 20년간 아시아 지역에서만 1억3천7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경고가 포럼의 화두였다.

현재 진행형인 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생물학적 경계를 초월해 기술이 융합되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 어느 시기의 산업혁명에 비해 빠르고 광범위하게 전개될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및 생명과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융합을 통해 기술혁신이 가속화될 것이고,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가 시장을 만드는 수요자 중심의 경제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따라서 기술과 시장에 대한 빠른 대응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성과 속도가 성패를 좌우하게 되고, 개인의 창의성과 열정이 핵심 경쟁력이 된다. 오히려, 넓은 지역이나, 많은 인구는 빠른 변화에 저해 요소만 될 뿐이며, 물리적인 교역을 위한 지리적인 이점도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끌 선제적 투자

주목할 점은 지역이나 기업을 이끄는 지도자의 혜안과 리더십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경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냥 새로운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며 현실과 기득권에 안주해선 안 된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진취적인 도전을 이끄는 리더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의 기회는 현실로 구현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 특히 ‘최고의 소프트웨어’는 괴짜(geek)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넘치는 자유 의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엄청난 집착, 기존 질서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갖추지 않고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성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경제의 활로를 열기 위해선 경쟁력 있는 업종에 대한 선제 투자가 시급하다. 정보통신과 인공지능, 친환경 등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요즘, 해외기업들은 선제적인 투자로 변화를 앞장서 이끌고 있음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이 좀 더 풍요롭고 쾌적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지도층의 몫이다. 권력자는 권세와 명예, 더 많은 재물 등을 꿈꾸지만 소시민은 당장 오늘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민생 정치를 말할 때 우리 역사에서 조선 중기의 개혁가인 김육(金堉)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에 이롭다(安民益國)!”  <황종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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