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

블랙리스트는 ‘임시 수출입 금지품목 명부’ ‘요시찰 인물 목록’ 등으로 풀이된다. 처음 만든 이는 1660년 즉위한 영국 왕 찰스 2세다. 그는 아버지 찰스 1세 사형에 관련한 판사 58명과 재판정 관리 이름을 모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찰스 2세는 왕좌에 오른 뒤 블랙리스트 인물 중 13명을 사형, 25명은 종신형에 처했다. 나머지는 도망갔다.

■ 사상·표현의 자유침해, 기본권 위배

한국에서 블랙리스트는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다양한 명칭과 형태로 작성됐다. 유신 시절 박정희 정권은 대중가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김민기 ‘아침이슬’, 신중현 ‘미인’, 송창식 ‘왜 불러’ 등은 불온하다고 방송·공연을 금지했다.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킴’은 단신인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다고 금지곡이 됐다고 한다. 그러다 1987년 8월 문공부는 186곡을 해금했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박정희 정권에서 월북·납북 작가들은 금기였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이기영, 한설야, 임화, 김남천 등과, 구인회에서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의 작품을 소지만 해도 체포됐다. 이들도 1988년 해금됐다.

박정희 정권은 언론과도 불화했다.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기관 정화’라는 명분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말 안 듣는 곳은 통폐합했다. 박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경향신문은 1966년 강제로 공매 처분했다. 신문사 사장을 간첩사건에 연루시켜 구속시키고 은행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식을 동원했다. 1970년대에도 동아일보 광고 탄압 등 비판적 언론과 말 잘 듣는 언론으로 구분해 관리했다.

민주화 이후에 사라진 줄 알았던 블랙리스트가 박근혜 정권 들어 부활했다는 증좌가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집,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블랙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순실씨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정황을 박 특검팀이 포착해 수사 중이라고 보도됐다. 당초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도로 대통령정무수석실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씨가 먼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필요성을 주장해 박 대통령이 비서실에 구체화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언론 보도로 공개된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시국선언 754명, 문재인 대선 후보 지지선언 6517명,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1608명 등 문화예술계 9473명의 이름이 열거 돼 있다. 최씨가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에게 갈 예산을 차단해 자신의 사업에 투입하려는 의도로 일을 꾸몄지만 김 전 실장이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까지 대거 포함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동아연극상 수상자인 연극연출가 이윤택 씨는 2015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사업 희곡 분야에서 1위로 뽑히고도 최종 지원작에서 배제됐다. 대선 때 고교 동기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돕는 연설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 유신시대로 돌아간 시대착오적 행태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작성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유신독재 시대로 돌리는 시대착오적 행태다. 문화예술의 힘과 가치는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인 표현에서 나온다. 11월 문인협회, 작가회의 등 문학 5개 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뜨리는 큰 사건”이라고 보수와 진보 진영에 상관없이 한목소리를 낸 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2014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파문을 일으킨 홍성담의 ‘세월 오월’처럼 과도한 정치편향성을 드러낸 작품까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좌파 문화예술인을 집중 지원하고 보수 성향 예술인들을 차별해 문화계 토양을 황폐화시켰다. 좌든 우든 이념적 잣대로 문화예술을 흔들고 돈으로 문화인을 통제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블랙리스트 작성은 헌법 위반이다. 헌법 제22조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경택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회장·본지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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