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재 편집부국장

지난 2011년 9월 한편의 영화가 개봉됐다.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다. 선천적인 장애학생 연두와 유리, 민수가 당한 성폭행과 폭력은 천인공노할 짓이다. 피해자들은 견디다 못해 용기를 내 고발했지만 소용이 없다. 가해자인 교장과 교사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처벌을 피한다.

영화 '도가니'의 줄거리다. 466만2914 명이 관람한 이 영화의 후폭풍은 거셌다. 정치권은 사회복지사업법을 손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당국과 경찰도 요란법석을 떨었다. 이후 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의 환경이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변형된 형태의 '도가니'가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보육원제도 허점 또다른 '도가니' 키워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원생들 간에 성폭력과 폭행이 지속돼 온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원장과 직원들은 끔찍한 일을 쉬쉬해가며 5년이나 감춰왔다. 바로 '도가니'라는 영화가 온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던 그 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보육원에서는 또다른 '공포의 도가니'가 연출되고 있었던 셈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면 슬그머니 묻혀 넘어갔을 터이다.

문제의 보육원에는 영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50여명이 지내고 있다. 나이 많은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아이들이 5~6명에 달한다. 어린 남자 아이들은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피해자들이 보육원측에 방이라도 바꿔달라고 읍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원장은 아동양육일지에 폭행이나 싸움 등의 용어를 적지 못하도록 했다. 더구나 이미 작성된 일지는 새로 쓰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육원에 사는 동안 살인, 자살, 가출 세가지만 생각했다"는 한 학생의 진술은 피해자들이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알고도 남게 해 준다. 사건을 은폐했던 원장 정 모 씨 등 3명은 구속됐다. 하지만 해당 보육원에는 폭행을 묵인했던 다른 직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 경찰 수사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행정 당국는 이 보육원의 시설 취소를 검토 중이다. 한 관계자는 "보육원에 머무는 아동 50명에 대한 조치 등 여러 가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기회에 사회복지사업법을 철저히 손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법에 따르면 아이들과 직접 접촉하는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는 해당 사회복지법인이 채용토록 돼 있다. 공익법인이 운영하는 보육시설과는 달리 민간영역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별도의 보고 절차도 없다. 법인이 임명하는 이사와 원장 등 시설의 장에 대해서만 관할 시군구청에 신고하면 끝이다. 교사와 복지사 등 직원들은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다.

행정당국이 법인의 임원이나 이사, 원장의 비위행위를 근거로 해임명령을 내릴 수는 있다. 여기까지가 당국의 한계다. 해임돼도 5년이 지나면 임원 등을 다시 맡을 수 있다. 아동학대로 처벌을 받아도 10년 뒤면 복귀가 가능하다. 민간단체의 운영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할 수는 없다는게 관할 행정당국의 입장이다.

■ 처벌 10년뒤 다시복귀...법개정 절실

도가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당시 "관객들이 보고 불편하라고 만든 영화입니다"라고 했다. 황 감독의 말처럼 영화를 본 이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무기력하게 유린당하는 장애아들. 가해자들을 감싸는 권력기관들이 저지르는 사회 부조리 등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폐쇄된 광주 인화학교 홈페이지에 있던 '학교장 인사말'은 가관이었다. "우리 학교는 '학교 안의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라는 모토로 거듭나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인두껍을 쓴 짐승의 교묘한 위장술이었던 셈이다.

이번 보육원 사건으로 또다시 보육시설에 대한 경고음이 울렸지만 얼마나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그리 희망적이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보육시설 관리감독에 사각지대가 많은 것이 현실이고 제도적 허점과 관리도 문제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도 아동시설 내 비위행위가 근절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씁쓸함만 커질 뿐이다. <이동재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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