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아내의 수면상자

[도자리의 가족이야기]

TV는 아내의 수면상자

참 희한하다. 아내는 TV를 켜 놓은 채로 잠이 들기 일쑤다. 볼륨을 줄이거나 끄면 곧바로 눈을 뜬다. 그리고 잠꼬대라도 하는 듯 "그냥 놓아 둬요"라고 말한다. 다시 화면이 밝아지면 금세 꿈나라로 돌아간다. 불빛이 비치거나 시끄러우면 좀체 잠을 못이루는 나와는 정반대이다.

200만원 짜리 단칸방에서 살던 신혼시절에는 몰랐던 버릇이다. 알뜰살뜰 모아서 방 2칸 짜리 아파트 전세를 얻은 이후부터 알게됐다. 아내는 침대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고 잔다. 반대로 나는 맨바닥에서 자는 건 고통스럽다. 오래전 부터 각자 자기 편한대로 숙면을 취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부분의 집안이 그러하듯 TV는 떡하니 거실 쪽에 자리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리모콘은 아내 차지이다. 볼륨 줄여달라는 얘기도 한두번이지, 진작 포기했다. 그래도 좁디좁은 아파트에서 소리까지 차단하기는 어렵다. 아예 문을 닫고 자는 건 습관이 됐다.

아마도 장인 장모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때문이지 싶다. 처가에 가면 TV가 혼자 고성을 지른다. 여든 중반이신 두 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졸거나 아예 주무신다. 아내도 판박이다.

멀뚱하게 혼자 있기도 머쓱하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도 소음은 여전하다. 간혹 '전기와 전파 낭비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 놓고 말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나 하나만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되니까.

평소 아내는 전기 절약에 열심이다. 낮에는 어두침침해도 전등을 켜지 않는다. 밝은 걸 좋아하는 내가 방안에 불을 켜면 은근히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집안에 들여 놓은 에어컨은 장식용에 불과하다. 한 여름 살인적인 무더위가 닥쳐서 "아주 아주 덥다"고 식구들이 아우성을 치면 그제서야 못이기는 체 에어컨을 가동한다. 그래봤자 1년에 2~3차례 트는게 고작이다.

겨울철 보일러도 '생존형' 범위에서 운용된다. 대부분 외출 기능으로 설정돼 있다. 집안에서도 제법 두툼한 옷 차림으로 지내는게 습관화 됐다. 아내 몰래 슬그머니 온도를 높여 놓기도 한다. 하지만 매의 눈을 가진 아내의 손길에 따라 머지 않아 원위치되고 만다. 딱 하나의 예외가 TV다. 휴일에 빈둥빈둥거리며 온종일 채널을 돌려도 다행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아내에게는 TV가 수면상자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시끄러운 소리는 자장가일테고. 어제도 아내는 손에 리모콘을 꼭 쥔채 잠이 들었다.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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