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헌 변호사

송금내역·문자메시지등 '대체 증거'있어야


A는 친한 친구인 B가 사업자금이 부족하다며 1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자 B의 통장으로 1000만원을 송금해줬다. 이후 다시 B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 거래처로부터 받아 가지고 있던 2000만원짜리 수표를 줬다. 한참후 또다시 B가 다시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A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현금 500만원을 친구 C가 보는 앞에서 B에게 줬다. 이와 같이 A는 B에게 총 3500만원을 빌려줬는데, B가 이를 계속 갚지 않아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B는 A로부터 돈을 빌린 적이 없다고 하면서 A의 청구를 부인하고 있다. B는 승소할 수 있겠는가.

상담을 하다 보면 수천만원, 수억원을 빌려주면서 차용증 없이 빌려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도 이런 금전 거래가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인 필자도 친구의 부탁으로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차용증 없이 돈을 빌려주었다가 문제가 생겨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에게 ‘왜 그렇게 큰 돈을 빌려주면서 차용증도 쓰지 않았어요?’라고 핀잔을 하기 일쑤다.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돈을 빌려줬는데, 차용증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돈을 안 주는데 소송을 하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나요?’라고 묻는 질문을 많이 듣게 된다. 이 질문은 ‘차용증 같은 돈을 빌려준 증거가 없는데도 소송을 하면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채무자가 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채권자는 소송을 하게 되는 것이고, 법원에서는 채권자의 주장이 ‘증거’로서 인정이 돼야 채권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판결을 하게 될 것이기에 질문자의 위와 같은 걱정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민사재판에서 금전 대여 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는 ‘차용증’만이 아니다. 은행거래내역에 금전이 오고간 사내역, 이메일이나 문자메세지 등에 돈을 빌려달라는 취지의 글, 수표의 배서내역 등의 자료가 증거가 될 수 있고, 돈을 빌려주고 받는 정황을 지켜본 증인의 진술도 증거가 될 수 있다.

위 사례에서 A가 B에게 처음 빌려준 1,000만원은 은행 거래내역을 제출하여 입증을 하면 될 것이고, 두 번째 빌려준 2,000만원은 수표의 배서와 지급제기 경로를 조회해 증거로 제출하면 될 것이며, 세 번째 500만원은 증인 C를 증인으로 신문하면 모두 입증이 될 것이다.

한편, B가 A로부터 위 금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A에게 종전에 빌려준 돈으로 되돌려 받은 것이지, A로부터 빌린 돈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상 B가 이러한 주장을 하려면 종전에 자신이 A에게 그만한 돈을 빌려주었던 사정을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입증이 없다면 A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재판에서는 말로만 주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증거로서 입증을 해야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질문자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차용증’이 없더라도 대여금 소송에서는 다른 증거를 통해서 얼마든지 승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또 문제이다. 승소판결을 받더라도 채무자에게 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그 판결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결국에는 채무자의 재산이 있어야만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주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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