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냉정함이 올바른 정치의 기본이다.

[일간투데이 김동초 기자] "이해 할 수 있지만 용서 할 수는 없다!" 시저가 긴 원정에서 돌아와 불륜 설에 휩싸인 마누라를 처형하고 한말이다. 로마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수많은 신화를 만들어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로마이야기를 쓰던 시오노 나나미가 종국에는 케이자르 시저의 빠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르투스란 인물도 로마공화정을 위해 반기를 든 두 아들을 죽인다. 시저의 등에 칼을 꽂은 부르투스와 동명이인이다. 이 당시의 일화를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렸다. 이 그림은 1789년 프랑스혁명당시 바스티유를 점령했을 때 전시되기도 했다.

필자가 밝히고자 하는 요지는 냉정함과 공평성이다. 비록 자기 친아들일지라도 공화정에 반기를 들면 목을 벴다. 그것도 친아들을 둘씩이나, 시저는 눈물로 호소하며 용서를 비는 사랑하는 마누라도 처형했다. 후일 시저는 당시 와이프의 변명이 충분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됐지만 그런 오해 자체를 양산시킨 당사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처형의 이유가 충분하다고 했다.

모두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서 필요한 결단력이며 냉정함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선 신이나 심지어 외계인이 아닐까라고 까지 불리 우는 이순신장군도 그런 살벌한 면으로 부하를 처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장군은 마음이 무척 여렸다고 한다. 늘 병중인 늙은 노모 걱정으로 훌쩍거리며 밤을 지새웠고 당파싸움으로 찌든 한심한 조정과 풍전등화의 국가위기 상황이 너무 아파 거의 매일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청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난중일기에도 등장하고 징비 록에도 대취한 면이 수십 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위 인물들의 공통점은 원칙에 기초한 대를 위한 일벌백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2017년의 대한민국을 보자 헌정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헌정파괴, 정경유착, 부정부패로 수많은 인물들이 불려 나왔다. 정치인, 기업인, 공직자, 문화인, 족보도 모르는 사이비 종교인까지 청문회와 검찰, 그리고 법정에 불려 나와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한다는 말이 거의 모르쇠와 아니다, 또한 기억안난다다. 심지어 국가 수장까지 모르쇠와 아니다 로 일관하고 있다. 처참할 지경이다.

■공정한 냉정함이 올바른 정치의 기본이다.

주로 한국가의 흥망성쇠는 타국의 침략과 천재지변이 쇠락과 멸망의 주원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우선적인 요인은 국가지도자의 애민 적이고 양심적인 철학과 냉정함이 부족한 게 절대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거기다 간신들이 들끓으면 바로 국가 워크아웃이라고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가가 망 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지한다는 자체가 거의 기적이다. 굳이 유지의 근거를 들자면 우리 국민들의 우수함 일거다. 지난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역사적으로 수많았던 우리나라의 모든 국란을 민초들이 막았고 구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철저하게 총체적인 난국을 맞고 있다.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가 정의가 바로서지 못해서 누란의 위기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지도자들의 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냉정함의 부족이다. 다시 말해 공평함을 기저로 한 엄격함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한 가정을 꾸리는 데는 정과 사랑만을 바탕으로도 유지되지만 한 사회와 국가를 다스리려면 공정함과 냉정함이 기본이다.

이해 할 수 있지만 용서 할 수 없다는 말은 아프지만 무서울 만큼 중요한 의미다. 아마 공명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 건 개인적인 처절한 고통보다 국가의 앞날에 무게를 두었으리라 본다. 그때의 아픔이 후일의 국가천년대계를 유지하는 길이란 걸 이미 제갈량이나 시저, 부르투스 그리고 이순신은 알고 있었으리라 본다.
다시 한 번 새겨 보고 싶은 말이다. “이해 할 수 있지만 용서할 수 없다.” 왜 작금의 대한민국에는 이렇게 까지 망가진 정치지도자나 재벌들 뿐 일까! 울화통이 터진다. 그나마 사법사상 가장 정의로운 특검의 활약이 유일한 희망이다. <김동초 정경부 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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